[커버스토리] 삼성물산, 앙고라 개발 어떻게 이뤄졌나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을 수출한다' .

삼성물산의 앙골라 프로젝트는 저개발국가의 경제부흥을 대행하는 '컨트리 마케팅(country marketing)' 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개발 계획 수립부터 산업시설 건립.제품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경제부흥 서비스를 일괄 수주한 것이다.

삼성물산 실무진은 "평범한 사업을 수주하려다 호박이 덩굴째 들어온 경우" 라고 말했다. 업계는 외환위기 이후 단순 무역중계에 한계를 느껴온 종합상사가 새로운 탈출구로 삼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 수주 과정=삼성물산은 지난해 11월 앙골라가 해저 유전 채굴 장비(20억달러)를 입찰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지 국영 석유회사 소낭골과 접촉했다.

먼저 소낭골 대표 등 관계자를 한국에 초청해 공장을 견학시키며 삼성이 경공업.중공업.첨단산업에 이르는 방대한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물산 김진태 앙골라 프로젝트 매니저는 "당시 공장을 시찰한 소낭골 관계자들이 먼저 해양 설비 외에 다른 산업개발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고 말했다.

앙골라 재정의 90%를 담당하는 소낭골 비센테 사장은 산토스 대통령으로부터 앙골라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라는 지시를 받고 있던 터라 한국의 개발 모형을 적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탁했다는 것.

삼성물산은 앙골라 전담팀를 만들고 플랜트.해양설비.자원개발 등 8개 사업본부에 앙골라 담당자를 정해 기간산업 발전 아이디어를 앙골라 정부에 제안했다.

1990년부터 가나에서 시행 중인 국영 석유회사 설비 증설사업 현장에 앙골라 실무진 30여명을 초청해 보여주었다.

비센테 사장은 세차례 더 삼성물산을 방문했고 지난 6월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현명관 부회장의 산토스 대통령 면담을 주선했다.

◇ 어떻게 추진하나=앙골라 현지 조사단은 "도로.항만 등 기초 인프라가 미흡해 본격적인 사업 착수에는 시간이 걸릴 것" 으로 진단했다.

연말까지 개발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내년부터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쉬운 사업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앙골라 인접국 4천5백㎞ 이내에서 유일한 수리 조선소를 정상화하고, 봉제공장을 만들어 25만명분의 군.경찰복을 생산하는 사업을 우선 벌일 계획이다.

다이아몬드와 금.철 등 지하자원 개발은 인프라 부족과 내륙지방의 정세 불안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설비.정유시설 등에 투입하는 재원은 원유를 담보로 세계은행 등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명관 삼성물산 부회장은 지난 6월 세계은행을 방문해 제임스 울펀슨 총재와 만나 앙골라의 정치적 리스크를 세계은행이 보증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세계은행은 올해를 '아프리카 지원의 해' 로 정했다. 엄창섭 이사는 "일단 44억달러를 수주했지만 앞으로도 해양개발 관련 대형 프로젝트가 널려 있다" 면서 "건설한 뒤 운영.마케팅까지 맡는 계약이어서 10년 이상은 지속될 사업" 이라고 말했다.

◇ 앙골라 진출사=앙골라는 소련과 가까웠다. 북한과는 독립 이듬해인 76년, 한국과는 92년에 각각 국교를 맺었다.

앙골라가 한국을 경제개발 모델로 인식한 것은 대우의 공이 크다. 대우는 한국과 앙골라가 국교를 정상화한 92년부터 내전으로 불안한 앙골라에 들어가 유전 2광구에 지분 참여했고 해양 설비와 유조선 등을 수출했다.

현대도 선박.자동차 등을 수출해 앙골라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앙골라에선 자동차.에어컨.가전제품부터 선박.유전설비 등 한국산 제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앙골라는 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이후 내전으로 경제개발을 이루지 못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천달러에 못미친다. 최근 내전이 종식 단계에 이르자 정부가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컨트리 마케팅이란=저개발국의 전반적인 경제개발이나 특정산업 분야를 도맡아 개발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사업을 수행하고 운영과 마케팅까지 맡는 방식으로 대우의 '세계경영' 과 비슷하다.

삼성물산은 그동안 파산 직전인 카자흐스탄의 제련소를 맡아 지난해 1억7천여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경영을 정상화시키면서 컨트리 마케팅을 가동해왔다.

그동안 벌여온 사업은 특정사업 분야에 한정돼 규모가 작은 데 비해 이번 앙골라 프로젝트는 전체 국가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것으로 규모가 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