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편지글은 생활사 보물창고 … 해독 어려운 초서 7년간 씨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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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문서(古文書) 해석의 손꼽히는 전문가인 하영휘(57·사진)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이 『옛 편지 낱말사전』(돌베개)을 냈다. 고려 말에서 조선 후기에 이르는 시기의 간찰(簡札·옛 편지)에 주로 쓰이던 용어 8000개를 뽑아 설명을 달았다. 간찰 용어 사전으로는 국내 최초다. 간찰에 빠지기 시작한 지 15년 만이고, 6명의 학자와 팀을 꾸려 본격 사전 편찬에 나선 지 7년만에 이뤄낸 노작이다.

 사실 대부분의 간찰은 한문 초서(草書·흘림체)로 쓰였고, 또 간찰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어휘가 많아 전문 연구자라해도 해독이 쉽지 않은 분야다. 하 소장은 “용어 설명을 위해 조선왕조실록, 한국문집총간, 승정원일기 등을 뒤졌으나 그런 고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가 이번 사전에 35%가량 된다”며 “전통문화의 보고(寶庫)인 간찰을 통해 옛 사람의 생활상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전 편찬의 계기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에서 ‘간찰 강독’을 하고 있다. 강의를 오래 들은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공책을 보여주며 잊혀지기엔 아까우니 사전을 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강의 듣던 분들 가운데 6명이 힘을 합쳤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간찰 영인본이 대개 본래 간찰보다 축소된 판형으로 돼 있어, 초서도 어려운데 글자도 작아 애로가 많았다. 그것 빼고는 팀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팀원끼리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자유롭게 작업을 했다.”

 -조선시대 간찰을 대부분 봤나.

 “그렇진 않다. 한국학 관련 기관이나 박물관 등에 소장된 간찰이 그야말로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간찰과 고문서는 우리 학계의 미답 분야다.”

 -간찰을 통해 어떤 점을 볼 수 있나.

 “조선시대 연구 하면 대개 퇴계나 율곡, 다산 등의 정치·사회 사상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간찰은 인간과 생활의 실상을 더 깊게 보여준다. 예컨대 조선의 선비 하면 정자에 앉아 시를 읊조리는 이미지가 있는데, 내가 간찰들을 통해 본 선비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양식을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편지에는 많이 나온다. 지연·혈연·학연에 의해 관계를 맺고 사는 모습은 요즘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하 소장은 서강대 사학과에서 조선후기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세기 유학자 조병덕의 편지 1700여 통을 분석해 『양반의 사생활』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초서는 89년부터 2006년까지 재단법인 ‘아단문고’에 재직하며 각종 고문서를 정리할 때 익혔다.

배영대 기자

옛 편지에 주로 쓰이던 용어

관억 :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서 슬픔을 억제함.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
인석 : 여전함. 전과 다름없이 그럭저럭 지냄.
협저 : 편지와 함께 동봉하여 보내는 별지.
시전 : 일을 보고 도장을 찍는다는 뜻으로 수령이 사무를 봄을 지칭하는 말. 지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관리를 지칭할 때 쓰는 말.
시전 : 부모님 중 한 분은 살아계시고 한 분은 돌아가셨을 때 쓰는 말. 즉 ‘시’(侍)는 살아 계신 분을 모신다는 말이고 ‘전’(奠)은 돌아가신 분을 제사 지낸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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