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프랜차이즈 History (2) - 몬트리올 엑스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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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외의 지역을 연고지로 한 최초의 메이저 리그 팀인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1969년에 처음으로 리그에 참여하였다. 이 해에 양대 리그가 동부와 서부 지구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NL의 두 신생팀 중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서부 지구에 배치되었고 엑스포스가 동부 지구의 새 멤버가 된 것이다.

엑스포스는 공격적인 작전 구사로 유명한 진 모크를 첫 감독으로 영입하고 새로 지은 재리 필드를 홈 구장으로 하여 의욕적인 출발을 하였으나, 1969년에는 52승 110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듬해에는 신인 칼 모튼 등의 선전에 힘입어 전년도보다 21승을 더 올렸으나, 꼴찌를 면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1971년에 엑스포스는 꼴찌를 탈출하였고, 이듬해에는 빌 스톤먼 투수의 노히트 게임 등으로 인해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3년에는 구원 투수 마이크 마셜이 31세이브로 구원 부문 수위에 올랐고, 그의 이와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엑스포스는 시즌 막판까지 동부 지구 패권을 노렸으나 결국 79승 83패로 4위에 그쳤다.

이 시즌이 끝난 뒤 엑스포스는 LA 다저스에 마셜을 내 주고 외야수 윌리 데이비스를 영입하였고, 1974년에 그를 주축으로 하여 팀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인 .491(79승 82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다시 지구에서 꼴찌에 그쳤고, 진 모크 감독이 떠난 뒤인 1976년에는 더욱 사정이 악화되었다.

결국 시즌 중 감독을 교체하는 초강수까지 두었지만, 이 치욕적인 시즌을 마쳤을 때 엑스포스는 무려 107패를 당한 상태였다.

1977년을 앞두고 엑스포스는 면모를 일신하였다. 1976년 올림픽 때 주경기장이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새 홈 구장으로 삼았고, 에인절스를 이끌었던 딕 윌리엄스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또한 '빅 레드 머신'의 멤버였던 쿠바 출신의 1루수 토니 페레스도 엑스포스에 합류하였다.

결국 이 시즌에 엑스포스는 다시 최하위 탈출에 성공하였고, 2년 뒤인 1979년에는 95승 65패로 시즌을 마쳐 처음으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였다. 또한 이 해에 엑스포스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이어 NL 동부 지구 2위에 올랐다.

이 때의 주축 멤버는 게리 카터와 래리 패리시, 앤드리 도슨 등의 젊은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1980년에도 맹활약을 하였고, 엑스포스는 시즌 막판까지 지구 패권을 놓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결국 필리스가 지구 챔피언에 오른 데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엑스포스가 강팀의 면모를 갖추었음을 부인할 팬은 없게 되었다.

1981 시즌은 파업으로 단축되었고, 결국 각 지구의 전·후기 우승팀끼리 디비전 시리즈를 펼치는 기형적인 형태로 포스트 시즌이 치러졌다. 엑스포스는 후반기에 동부 지구에서 1위에 올랐고, 전반기 1위였던 필리스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제압하여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랐다. 상대는 이 해에 선풍을 일으킨 멕시코 출신의 사우스포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앞세운 LA 다저스였다. 엑스포스는 첫 두 경기에서 다저스를 꺾었으나, 3~5차전을 모두 내 주며 첫 월드 시리즈 진출의 꿈을 접고 말았다.

1982년에 앨 올리버가 엑스포스 소속 선수로는 처음으로 리그 타격왕과 타점왕에 올랐으나, 팀은 다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빌 버든이 새로 지휘봉을 잡은 이듬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1984년에는 카터가 필리스의 마이크 슈미트와 공동으로 리그 타점 수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엑스포스는 5위로 추락하였다.

그러나 1985년부터 엑스포스는 다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벅 로저스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고, 팀 레인스 등이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86년 타격왕에 오르기도 한 레인스는 정확한 타격과 뛰어난 주루 플레이로 팀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엑스포스는 1987년에는 91승을 올렸으며, 1988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시즌 막판의 부진으로 뉴욕 메츠에 지구 우승을 양보했다.

1989년에 엑스포스는 랜디 존슨 등 3명의 투수를 내 주고 시애틀 매리너스의 간판 투수 마크 랭스턴을 영입하였다. 이는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린 승부수였다. 그러나 결국 엑스포스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시즌 막판에 무너졌고, 랭스턴은 한 시즌만을 엑스포스에서 보낸 뒤 떠났다.

엑스포스는 1990년에 85승 77패로 지구 3위에 오른 뒤, 1991년 급격히 몰락하였다. 시즌 중에 탐 러넬스가 새 감독이 되었지만, 그도 팀을 꼴찌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1992 시즌 중에 감독이 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펠리페 알루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팀을 다시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엑스포스는 1992년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이어 지구 2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시즌 막판까지 필리스와 치열한 포스트 시즌 진출 경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양 리그가 3개 지구로 다시 나뉜 1994년에 엑스포스는 초반부터 지구 선두로 나섰고, 8월 중에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된 시점에서 74승 40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는 메이저 리그 전체 최고 승률이었다. 그러나 결국 중단된 시즌은 재개되지 않았고, 엑스포스의 첫 우승 꿈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이 시즌이 끝난 뒤 팀의 간판 스타였던 외야수 래리 워커와 마퀴스 그리솜, 마무리 투수 존 웨틀랜드 등이 팀을 떠났다. 그 여파로 1995년에 엑스포스는 지구 최하위인 5위로 추락하였다.

1996년에 엑스포스는 마크 그루질라넥과 멜 로하스 등을 앞세워 나름대로 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리그 방어율 수위에 오르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사이영상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5할에 미달하는 승률로 지구 4위에 그쳤다. 이후 엑스포스는 99년까지 계속 최하위를 간신히 면하는 데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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