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열전] 후안 세바스챤 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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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털 하나 없이 시원하게 민 머리에 짙은 콧수염, 큰 키, 그리고 푸른색 페라리 스포츠카... 이쯤이면 연상되는 축구 선수가 하나 있다.

소속팀 라치오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될 키플레이어 후안 세바스챤 베론(Juan Sebastian Veron), 바로 이 강한 개성의 소유자가 오늘 소개할 인물이다.

베론이 태어난 곳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약 60Km 떨어진 도시인 라 플라타(La Plata)였다.

60년대 후반 에스투디안테스(Club Estudiantes de La Plata)에 리베르타도레스컵을 연거푸 세 번이나 안겨주었던 아르헨티나 대표 출신의 왼쪽 공격수 후안 라몬 베론(Juan Ramon Veron)의 아들인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역시 '마법사(La Bruja, The Wizard)'란 닉네임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그것을 이어받아 '작은 마법사(La Brujita, The Little Wizard)라는 별명으로 불려진다.

5살 때부터 공차기를 시작한 베론은 학업에는 그다지 충실치 못한 편이었다.
16살 때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결심한 그는 공부가 싫으면 차라리 일을 하라는 부모의 뜻에 14살 때까지 친구 아버지가 경영하는 수선 가게에서 하루 10시간씩 일을 해야했다.

15살 때부터는 결심대로 일과 후 축구 연습에 참가하는 열의를 보이면서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그가 축구 선수로 프로 무대에 첫발을 디딘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의 일이었다.
그의 소속팀은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가 활약했던 에스투디안테스였다. 하지만 당시 팀은 아르헨티나 2부 리그 소속이었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 팀을 2부 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그에게 아르헨티나 명문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에서 마라도나와 함께 뛸 수 있는 행운의 기회가 찾아든다.

하지만 마라도나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보카에서 단 한 시즌만을 보낸 그에겐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카로 이적할 당시의 두배인 7백만 불에 이탈리아 삼프도리아(Sampdoria)로 이적한 그는 준비된 실력과 카리스마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무대에 적응해 나갔다.

96/97 시즌 당시 삼프도리아 감독이었던 현 소속팀 라치오의 감독 에릭손(Sven Goran Eriksson)에 의해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 내지는 오른쪽 미드필더 역할을 담당했던 베론은 97/98 시즌 라치오로 떠난 에릭손의 바통을 이어받은 메노티(Luis Cesar Menotti)에 의해 공격에 보다 자유로이 가담케 되면서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이후 파르마로 이적한 98/99 시즌 그는 팀을 잇따라 이탈리안 컵과 UEFA컵에서 우승시키면서 자신의 진가를 과시했고, 다음 시즌 3천만 불이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또다시 라치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라치오로 적을 옮긴 그의 성공신화는 99/00 시즌에도 이어져, 라치오가 유벤투스를 제치고 새로운 밀레니엄 첫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그 어느 누구보다 큰 수훈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바로 베론이다.

한때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반 할(Luis Van Gaal)이 탐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라치오의 보배 베론의 장점은 미드필드 어느 곳에 갖다 놓아도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과 장신임에도 뛰어난 개인기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오차 없는 정확한 패싱력과 컨트롤 능력, 그리고 정확한 오른발 슈팅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00/01 시즌 라치오의 리그 2연패와, 브라질 전 패배로 다소 상승세가 주춤한 듯한 아르헨티나의 2002 월드컵을 향한 질주의 재시동은 플레이메이커 베론의 발끝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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