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품위의 마지막 보루’ 돼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8호 02면

“국민은 언제나 위대하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믿지 않는다. 독가스실에서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한 건 히틀러였다. 하지만 그 히틀러에 환호하면서 유대인 사냥에 동참한 건 다름 아닌 독일 국민이었다. 중국의 문화혁명도 마찬가지다. 홍위병들은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어록을 손에 들고 스스로 ‘공산주의와 인민의 수호자’라며 광분했다. 세월이 지나 보니 그들은 정적을 제거하려는 마오쩌둥의 책략에 춤을 춘 허수아비였다. 1000만 명 이상이 학살됐다는 문화혁명은 ‘인민의 이름으로’ 중국을 수십 년 후퇴시켰다. 하지만 독일 국민이나 홍위병이나 당시에는 자기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을 게 뻔하다. 역사의 큰 비극은 대개는 ‘선의의 확신범’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주장이 헛소리는 아닌 듯하다.

김종혁의 세상탐사

비슷한 논리구조로 된 “사법부는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말이 있다. 사법부가 정의의 보루여야 하는 건 당위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법부가 정의에 반(反)하는 역할을 한 적도 많다. 군사정권 때 저질러졌던 수많은 사법살인이 그 좋은 사례다.

과거에만 그런 건 아니다. 요즘도 사법부를 둘러싼 논란이 많다. 광주지법 선재성 부장판사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다. 선 판사에 대한 재판은 그가 근무하던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그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했고 사법시험 후배인 재판관이 선 판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론이 들끓자 광주지검은 “항소심 재판은 서울에서 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사상 처음 재판관 관할 이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가 선 판사와의 인간적 관계 때문에 부적절한 판결을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의심을 하는 건 너무나 상식적이다.

사법부의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둘러싼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난 9월 법무부는 법조계·학계·언론계 인사 2640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다. 비싸지만 전관 변호사를 선택하겠다는 대답이 53%, 수임료가 싼 비(非)전관 변호사를 선택하겠다는 건 7%였다. 왜 전관을 선택할까. 사건 승소 가능성이 높다(47%), 판검사에게 유리하게 부탁할 수 있다(31%), 최소한 불리한 판결은 안 받는다(20%) 순이었다. 전문성이 높아서라는 응답은 불과 5%였다. 그럼, 사회정의를 많이 외치는 진보적인 판사들은 전관예우와 상관없을까. 그렇게 보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 때의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5년 사이 60억원, 진보 판사들의 아이콘이던 박시환 대법관도 1년10개월 동안 약 20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었다.

대한변협은 올 1월 재임용 대상 판사 153명을 상대로 변호사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들 중 재임용돼야 한다고 찬성표를 받은 법관은 74명, 안 된다는 반대표를 한 표 이상 받은 법관은 79명이었다. 법정에 늦게 오거나 졸거나 막말을 하는 판사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사법부가 아파할 대목을 이처럼 길게 나열한 건 사법부를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사법부가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요즘 일부 판사는 마치 자신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로부터 벗어나 있고,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처신하는데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판사는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하고 또 다른 판사는 “(대통령)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됐으니 푸하하”라면서 대통령을 공공연히 조롱하고 나섰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판사들의 이런 발언에 대해선 “왜 이처럼 경박한가”라고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어떤 사회조직이든 그 조직의 품위를 손상시킨 구성원에 대해선 징계를 한다. 하지만 사법부는 아무래도 좀 다른 조직인 것 같아 의아하다.

재판관이 불공정할 것 같으면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 현재는 재판관이 사건 당사자이거나 당사자와 관계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지법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관할 이전 신청을 받아들였듯이, 앞으로는 보다 광범하게 법관들에 대한 기피 신청이 인정됐으면 한다. 저렇게 거친 말을 쏟아내는 분들께 재판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