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였던 그의 연주가 살가운 건 잘 안 풀린 인생살이에 공감해서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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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27면

연말의 분주가 시간을 오글오글하게 만든다. 되도록 작업실 안에 꼼짝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는 편이지만 매년 빼놓지 않고 참석하는 동창모임이 하나 있어 막 다녀왔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대학동기생 모임’이라고 명명해야 할까. 민주동문회라는 예스러운 이름의 집단인데 그 구성원들의 면면과 삶이 딱 그렇다. 멤버 중에 간혹 국회의원에 당선된다거나 사업이 번다해진다거나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성공’ 이후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 자리 역시 실패한 사업가, 정치 낭인, 막막한 퇴직자, 도사풍·철학자풍의 만년 실업자 등등 여전했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의 남편인 녀석이 늦게 참석해 죽일 듯이 말싸움이 붙었고, 지난해 참석했다가 논쟁의 코너에 몰렸던 전직 통일부 장관은 예상대로 오지 않았다. 늘 그런 식이다. 안 풀린 인생에는 날이 서는 법이어서 풀린 인생이 기겁을 하고 달아나게 만드는 것이 ‘민주’의 과거를 지닌 동창녀석들 특징이다.

詩人의 음악 읽기 피아니스트 존 오그던

취기와 피로와 복잡한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지금 틀어놓고 있는 음반이 존 오그던(위 사진)의 피아노 연주집이다. ‘나는 꼼수다’의 시사돼지 김용민과 얼굴도 체구도 매우 비슷한 거구의 영국 사나이다. 196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아슈케나지와 공동 우승으로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정신병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다가 52세에 황망하게 죽었다. 리스트 곡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였고, 생전의 리스트가 두려워했다는 신비의 프랑스 작곡가 알캉의 곡을 뛰어나게 해석한다. 연주 길이가 무려 4시간에 달하는,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피아노곡의 하나로 꼽히는 소라브지의 오푸스 클라비쳄발리스티쿰(Opus Clavicembalisticum)도 유려하게 풀어 나가는 것이 오그던이다. 작곡도 병행해 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꽤 들을 만하다.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늘 차지하고 있는 아믈랭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믈랭 식의 ‘넘사벽’ 초절정 기교보다는 약음에서 디테일의 섬세함이 오그던의 강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거운 덩치와 아름답고 섬세한 사운드 그리고 스키조프레니아-정신병이 교차한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하는 반문은 지난 세기의 상투어였다. 죽고 싶고 터지고 싶고 미쳐 폭발하고 싶어서 별짓을 다하던 일이 20세기에는 흘러 넘쳤다. 이름이 ‘동’이었던 후배 녀석은 시너를 제 몸에 들이붓고 강의실에서 불에 타 죽었다. 나는 그의 울적한 표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체구는 작고 목소리가 굵었는데 죽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차라리 일찍 죽어 궁창의 별이 된 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인가. 안철수·박경철·법륜의 위로에 가슴을 쓸어 넘기는 지금 20대들의 심경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도 견고한 철옹성 같기만 하리라. 제 몸에 불이라도 붙이는,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묻던, 지난 세기 청춘들의 방황과 분노가 이들에게는 차라리 낭만으로 보이리라.
어떻게 태어나서 결국 죽는다. 혹시 내 묘비명을 세운다면 이렇게 쓰리라. 하지만 부질없이 비명 따위를 세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저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오그던의 피아노 선율. 그가 미쳐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음악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격정이었을까. 파괴였을까. 혼돈이었을까. 어둡고 음산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초점 없는 눈으로 두들기며 그는 이 세상이라는 족쇄의 바깥을 엿보았던 것일까. 자유로웠을까. 성공이거나 실패로 나뉘는 잣대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존 오그던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음반

세상은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꾸려 간다. 미친 사람들은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대학동기생 모임’을 만들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정육점 식당쯤에 따로 모여 시끄러운 정치논쟁을 벌인다. 이제껏 희망이 없었고 앞으로도 희망은 더 없으리라. 미쳤으니까. 그렇게 사는 방법을 철학적이고 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용어로 방황이라고 한다. 아, 이제 알겠다. 존 오그던의 피아노 연주가 살갑게 들리는 까닭을. 그의 정신병과 생뚱맞게 뚱뚱한 체구와 터무니없이 섬세한 약음 처리가 뒤섞여 방황 인생들의 궁경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해석에 반대한다고 수전 손태그는 썼는데 오그던의 피아니즘을 방황으로 이해하는 이 제멋대로 해석에 손태그는 공감해 주지 않을까.

머리 꼭대기를 휘젓던 취기가 이제 발끝에 걸려 있는 것이 느껴진다. 두어 시간 멋대로 마음대로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연주자의 정신병과 잘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가 찰떡처럼 콩떡처럼 붕가붕가하는 중이다. 취중의 감정과잉과 인생의 방황을 혼동하고 버무렸다. 애들 말로 ‘쪽팔리는’ 글을 썼다. 그래도 혹시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해 줄 수는 없을까. 연말의 시끄러운 정육점 식당에서 잘 안 풀리는 인생들과 더불어 제 인생의 위치를 확인하는 중년의 방황하는 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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