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이라도 징계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은배(45·사법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민주노동당에 불법 후원금을 낸 혐의로 기소된 현직 교사들에 대한 재판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특히 이 판결문에서 최 부장판사는 전교조 소속인 이들 교사의 행위가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도 공무원 관계의 질서 유지를 위한 징계 사유로는 삼을 수 없다고 제시해 상급심 판단이 주목된다.

 최 부장판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라며 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판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따라 공무원인 최 부장판사가 평소 자신의 생각을 같은 공무원인 교사에 대한 재판에서도 표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최은배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고 있는 인천지법 행정1부는 전교조 인천지부 소속 교사 김모씨 등 7명이 인천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본지가 9일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김씨 등이 낸 돈이 ‘당비’가 아닌 ‘정치 후원금’이라고 판단했다. “민노당 측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당원 명부를 제출하지 않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지만 이들이 당원으로 가입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소액 후원금 납부는 실정법으로서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것은 될지언정 징계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행 정치자금 제도상 후원금을 납부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정당의 이념이나 강령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후원금 납부로 인해 직무상 어떤 위험이 초래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시·도의 상당수 교육감이 비슷한 사례의 교사들에 대해 징계 절차를 개시하지 않은 점 등도 이유로 들었다.

 국가공무원법 65조 4항과 공무원 복무규정 27조가 공무원의 정치 행위와 후원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만일 정당에 기부하는 행위 일체를 정당 지지 행위로 봐서 규제하게 되면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또 ‘특정 정당이 집권할 때 반대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면 혹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해 심정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돈을 기부하는 행위가 반드시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이 정당 후원금을 내는 건 법으로 금지돼 있는데 이를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재판부가 심지어 ‘두 개 이상의 정당에 기부함으로써 정치 발전에 기여한다’는 가설까지 만들어 꿰맞춘 건 궤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정부를 비판하는 정당과 집권 정당에 대한 후원금 납부는 구분돼야 한다고도 했다. “후원금을 납부 받은 정당이 정부를 비판하면서 정부 반대세력을 형성할 경우 그 정당에 대한 후원금 납부 행위에 대해 이뤄지는 징계는 정권 반대자에 대한 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정권을 장악한 정당에 후원금 기타 정치자금을 납부해 권력의 상층부로 진입하려는 공무원이나 교사의 후원금 납부 행위와 달리 취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강수·이동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