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국 내 공관 진입 탈북자 보호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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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 정부가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 내 일본 공관으로 탈출하려는 탈북자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8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올해 초 “중국 국내법을 존중해 공관 밖의 탈북자를 공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겠다”고 서약한 문서를 중국 정부에 제출했다. 요미우리는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려는 중국 정부의 압력에 양보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중국에서의 탈북자 보호를 사실상 단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단은 2008~2009년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이 받아들인 탈북자 5명의 일본 입국 문제였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불법 월경(越境)자’로 규정해 출국을 허가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탈북자들의 공관 내 체재 기간이 2년8개월까지 됐다. 일본 측은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해 말 ‘탈북자들을 보호해선 안 된다’는 중국 측 주장에 “유의하겠다”고 구두로 답했지만, 중국 공안 당국은 ‘그 정도론 안 된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중국 공안의 요구대로 올해 초 서약서를 제출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탈북자들은 지난 5월 일본에 왔다.

 일본 정부는 2006년 탈북자 인권 보호를 위한 북한인권법을 제정했고, 그동안 재외공관을 통해 200명에 가까운 탈북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약서를 제출한 이후엔 중국에서 탈북자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졌고, 지난 3월 또 다른 탈북자들로부터 보호 요청을 받은 선양 총영사관은 서약서를 의식해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인권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서약서의 존재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브리핑에서,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은 참의원에서 “밝힐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중국으로부터 탈북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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