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앱 누르면 2m 앞 스피커에서 비틀스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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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씨가 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에서 애플 파이(Apple-FI)로 음악을 듣고 있다. 아이폰(머리 위)도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일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32)씨의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 소파에 누워 있던 김씨가 셔츠 윗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리모트(Remote)’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터치했다. 손바닥만한 아이폰 화면에 영국의 전설적 록그룹 비틀스 등 아티스트 목록이 곧바로 나왔다. 화면 왼쪽에는 CD 재킷 사진도 보였다.

 김씨가 수백 개의 앨범 중 비틀스의 넘버원 히트곡을 담은 앨범 ‘1’을 터치하자 ‘러브 미 두(Love Me Do)’부터 ‘렛 잇 비(Let It Be)’까지 곡 목록이 차례로 출력됐다. 아이폰 화면에서 ‘렛 잇 비’를 터치하자마자 2미터 떨어진 스피커에서 폴 메카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폰이 리모콘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김씨는 “한 달에 앨범 5~6장을 구입하지만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은 CD는 구입하고 나서 곧바로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하고 나서 음악을 듣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오디오 라이프’가 진화하고 있다. 1980년대 영국 출신의 록그룹 듀란듀란의 ‘빽판’(불법 복제 LP판)과 함께 청년들의 여린 가슴을 적시던 ‘하이파이(HIFI·High Fidelity의 줄임말로 고음질을 뜻함)’ 오디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젠 PC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피시 파이(PC-FI)를 넘어 무선으로 음악 파일을 전송해 재생하는 애플 파이(Apple-FI)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다음에 관련 동호회가 10여 개에 이르고, 회원 수가 2만5000여 명에 이를 만큼 음악감상의 디지털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CD트랜스포트(위)와 DAC(아래). DAC는 피시 파이를 즐기는 데 필수품이다.

 예컨대 10년 전 시작된 김씨의 ‘오디오 라이프’는 2년 전부터 크게 바뀌었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등장하면서부터다. 10평 남짓한 김씨의 작업실을 가득 채웠던 CD는 모두 화곡동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

 김씨는 “그동안 구입한 CD만 800여 장이지만 대부분은 집에 있다”며 “작업실에서는 애플 파이로 음악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 동안 사모은 대부분의 CD는 PC에 연결된 1TB(테라바이트·1024GB) 외장 하드디스크에 파일 형태로 들어있다.

 아이패드로 디자인 관련 잡지를 보던 김씨가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겟츠의 이름을 고르자 작업실에는 특유의 부드러운 색소폰 소리가 흘렀다. 김씨는 마음 가는 대로 재즈 음악을 손가락 하나로 선곡했다. 그는 “애플 파이를 시작하면서 CD 장식장 정리할 필요도 없고 아티스트 이름 순서대로 정리할 필요도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피시 파이’ ‘애플 파이’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성이다. 김씨는 스마트폰 하나면 컴퓨터에 저장된 수천 곡 중 하나를 5 초 만에 골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 그가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은 애플의 PC용 음악 재생 프로그램인 아이튠즈가 자동으로 기억해준다. CD장을 뒤지지 않아도 최근에 들었던 음악을 손가락 터치 한 번 만에 찾을 수 있다. 아티스트 이름, 혹은 앨범 제목에 따라서 정렬도 가능하다.

 음악 저장형식도 당연히 달라졌다. LP는 둘째 치고 CD도 디지털 음원에 ‘권력’을 넘겨준 상황, 요즘 음악저장 매체로는 하드디스크가 대세다. 최근에는 소음이 없는 SSD(Solid State Disk)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또 ‘MP3’로 대표되는 고음질 파일 압축 기술이 등장하면서 웬만한 음악은 CD에 못지 않는 수준으로 즐길 수 있다. 휴대도 간편해 1GB(기가바이트) USB 드라이브 하나에 수 백 곡을 저장할 수 있다. CD 20장 분량의 앨범을 1GB USB 메모리 하나에 담는 셈이다. 1GB USB 메모리는 현재 1만~3만원 수준이다.

피시 파이 이렇게 즐긴다

진공관 앰프. PC에서 전해진 음악 신호를 스피커에서 들을 수 있도록 증폭해준다.

‘피시(PC) 파이’와 ‘애플 파이’를 즐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집에 먼지 쌓인 구형 전축과 PC가 있고 십여 만원만 투자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다.

 피시 파이로 음악을 듣고 싶다면 DAC(Digital to Analog Converter) 기기를 구입해야 한다. DAC는 오디오꾼(?)들 사이에서 ‘댁’이라고 불리는 필수 품목이다. 디지털 신호를 사용하는 PC와 아날로그 신호를 사용하는 앰프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가격은 10만원에서 수백 만원까지다. 인터넷에는 피시 파이 전문 업체도 등장했다. 앰프와 스피커도 수십 만원에서 수천 만원까지 다양하다. 요즘에는 DAC 가 내장된 앰프도 팔리고 있다. 50만~200만원 수준이다. 애플 파이로 멋진 재즈 음악을 듣고 싶다면 ‘애플 에어포트 익스프레스’가 있어야 한다. 대략 12만원 수준으로 컴퓨터와 앰프 사이에서 무선으로 음악 파일을 전송한다. PC에 저장된 음악이 없다면 스트리밍 서비스나 무료로 공개된 인터넷 라디오를 이용하면 된다.

글=강기헌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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