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진보에 대한 두려움 - 〈불-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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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불모·불임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8월 2일까지 열리고 있는 네번째 기획공모전 〈불-임〉은 두려운 미래, 혹은 그 두려움을 잉태한 현재를 미술로 조감한다.

소장평론가 이필씨가 기획하고 조광현·정보영·김두진·홍수연·허구영·최우람·장태식·금중기·양만기·올리버 그림 등 10명의 신진작가가 참여했다.

이 기획은 과학기술이 인간·생태·인문적 사회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인간복제·생명합성·인공지능·시험관 아기·사이보그 등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가치관·윤리·도덕은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암울한 현실에 대한 불안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조광현의 '치유와 숲'은 정글 식물이 거의 허리가 잘린 거대한 나무를 뒤덮으며 무성하게 자라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얼핏 종말을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속에는 치유를 바라며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는, 또는 자연에 의한 복원과 치유도 완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갈망과 불안감이 함께 담겨 있다.

정보영은 균사체를 연상케 하는 이상한 세포덩어리가 집단으로 솟아오르는 초현실적이고 섬뜩한 작품을 선보였다.

존재의 막연한 익명성이나 그 존재가 맞닥뜨리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김두진은 신체를 조각낸 토막을 장식장의 접시 속에 진열한다. 진열된 토막들은 주인이 채집해온 기형적인 장식품처럼 보인다. 자신이 자연의 정당한 산물이라는 자신감은 이 접시들 앞에서 흔들리게 마련이다.

홍수연은 미처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성장을 멈춰버린 듯한 자그마한 생명세포를 그려내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불임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다.

허구영은 돌부스러기가 흩어진 삭막한 바닥 위에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아기의 만화 이미지를 TV모니터에 띄워놓았다.

현실은 이미 파괴, 불모화됐고 유전자 조작에 의한 성공적인 인류개조의 꿈은 폐허의 자료로만 남게 됐다는 상황설정이다.

최우람씨는 줄지어 선 캔을 날카로운 기계손이 뚫고나오는 이미지를 제시했다.

우리 주변에 기생하며 번식하는 기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같은 강박증적 화면이 자연스럽게 보일수록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공포는 정당화된다.

장태식은 거세되었음에도 끝없이 복제되는 남성의 신체를 즐비하게 늘어놓는다. 남성성은 없어지고 생산을 위해 동원될 기계부품이 된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금중기는 수정란의 확대사진과 방독면을 쓴 남녀를 함께 제시한다. 연약한 수정란의 실핏줄과 구조는 방독면으로 상징되는 오염에 의해 이미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양만기는 유전자 복제 및 조작에 의해 탄생하는 생명체들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맞춤아기는 모태와의 연결없이도 인간과 똑같은 형상으로 탄생된다.

올리버 그림은 수족관의 금붕어를 닮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과학실험실의 모니터와 같은 분위기로 제시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이 냉정하고 비인간적으로 행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추한 것 속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고 오직 아름다운 것 속에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플라톤의 〈향연〉 중에서)의 메시지를 다시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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