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일 만의 어퍼컷, 나는 우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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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가 5일(한국시간) 셰브론 월드 챌린지 18번 홀에서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뒤 포효하고 있다. 우즈의 우승은 2009년 11월 호주 마스터스 이후 749일 만이다. [사우전드오크스(미국 캘리포니아주) AP=연합뉴스]
우즈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바람도 잠시 숨을 죽였다. 타이거 우즈(36·미국)가 17번 홀 4.5m 버디 퍼트를 앞뒀을 때 갤러리는 숨을 죽였고 흔들리던 나뭇잎들도 사진 속인 듯 멈춰 버렸다. 우즈는 이 홀 버디로 선두를 따라잡았다. 마지막 홀에서 2m짜리 버디 퍼트를 넣어 우승을 확정했을 때 우즈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

 호랑이가 다시 필드에서 포효했다. 2009년 말 터진 섹스 스캔들로 고개 숙였던 골프 황제가 2년여에 걸친 우승 가뭄을 끝내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즈는 5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 오크스의 셔우드골프장에서 벌어진 셰브론 월드 챌린지 최종 라운드에서 세 타를 줄여 최종 합계 10언더파로 잭 존슨(35·미국)을 한 타 차로 따돌렸다.

 대회는 열여덟 명이 참가한 소규모 이벤트 대회다. 그러나 우승은 의미가 크다. 우즈는 16번 홀까지 한 타를 뒤지다가 마지막 두 홀을 모두 버디로 끝내면서 한 타 차 역전승을 거뒀다. 결정적인 순간엔 정확하게 마침표를 찍는 끝내기의 황제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스캔들 이후 우즈는 제대로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네 타 차 선두를 달리다 역전패했다. 지난 4월 마스터스와 11월 호주 오픈에서 잠시 선두에 올랐지만 마지막에 미끄러졌다.

우즈는 “긴장됐지만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했고 모든 것이 결정 나는 마지막 두 홀에서 이번 주 친 것 중 가장 좋은 샷 세 개가 나왔다”고 말했다.

 우즈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간다는 신호는 자주 나왔다. 2라운드에서 우즈와 동반 경기를 한 최경주(41·SK텔레콤)는 우즈의 이글을 두 번이나 봤다. 최경주는 “그의 샷은 예술적이었다. 우즈는 돌아왔다”고 말했다. 우즈의 장점인 장타도 회복됐다. 그의 캐디 조 라카바는 “172야드인 17번 홀에선 9번 아이언을 세게 쳤고, 158야드가 남은 18번 홀 두 번째 샷도 9번 아이언으로 부드럽게 쳤다”고 말했다. 두 홀에서 우즈는 모두 버디를 잡았다. 우즈는 “내년에 좋은 성적을 낼 것이고 재기 선수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도 했다.

 그러나 우즈가 골프계를 호령한 과거의 황제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골프계의 시각도 여전하다. 우즈는 3라운드에 보기를 다섯 개나 범하면서 리드를 빼앗기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종라운드 후반 들어서는 뒤땅성의 샷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우즈의 회복 여부도 문제지만 더 힘겨운 도전은 경쟁자들도 상승세다. 공교롭게도 우즈가 우승한 날 로리 매킬로이(22·북아일랜드)와 리 웨스트우드(38·잉글랜드)도 유러피언 투어 등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우즈가 우승한 셰브론 대회에는 1위 루크 도널드(34·잉글랜드)를 비롯, 세계 랭킹 5위까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140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하는 정식 대회라면 우즈가 우승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스캔들 이전, 우즈와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한 선수들은 한여름 뙤약볕에 내놓은 얼음처럼 쉽게 녹아내렸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동반 경기한 잭 존슨은 두 타 차로 끌려가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고 한때 역전에 성공하기도 했다.

 우즈의 이번 우승은 과거의 황제로 돌아가는 중요한 이정표다. 우즈의 상승세는 확실하다. 그러나 우즈가 유일하게 가치를 두는 메이저대회 우승컵이 아니고서는 황제의 귀환을 선언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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