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시장의 구조조정 압력 반영"

중앙일보

입력

현대건설.고려산업개발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린 한국기업평가(한기평)의 결정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당장 현대 계열사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기평은 '시장의 신뢰 실추' 를 반영했다는 설명이지만 당사자인 현대측은 '투기등급' 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혹시라도 '개입' 의혹을 살까 걱정하는 듯 "한기평의 독자적인 결정이며, 정부와는 무관하다" (금감위 서근우 국장)고 강조하고 있다.

◇ 신용등급 조정의 의미〓현대그룹 신용등급 조정작업을 맡았던 한기평 최강수 평가1팀장은 "현대그룹이 시장에 약속한 구조조정 계획을 이행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상향 조정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번 신용등급 조정은 구조조정을 이행하라는 시장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라는 얘기다.

신용등급은 기업어음의 경우 A3- 바로 아래인 B+부터, 회사채는 BBB- 한계단 아래인 BB+부터 투기등급이 된다.

투기등급이 된다해서 당장 은행이 두 회사의 대출을 회수한다거나, 투신권이 두 회사 회사채.기업어음(CP)의 상환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회사는 앞으로 회사채나 CP의 신규발행은 물론 차환발행이 어렵게 된다.

이미 발행한 회사채와 CP의 만기가 계속 돌아오기 때문에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돈되는 자산을 팔든가, 정부나 금융기관의 특별 조치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한기평의 결정에 따라 현대측이 구조조정 계획 이행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을 경우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현대 계열사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 현대, "이해할 수 없다" 〓현대는 한기평의 신용등급 조정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현대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는 "신용등급을 왜 낮췄는지 이해할 수 없다" 며 "자체 분석 결과 현재의 각 계열사 재무상태로는 등급이 내려갈 이유가 전혀 없다" 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형제간 싸움과 기업의 신용등급을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며 "잠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이를 재무상태와 연결했다면 큰 잘못" 이라고 주장했다.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는 이날 강연제 상무 주재로 관련자들이 모여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등 하루종일 급박하게 움직였다.

현대건설 재정부 이승렬 이사는 "자금난이 우려된다" 며 "회사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계열분리 문제와 관련해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 같다" 고 말했다.

현대 관계자들 대부분이 이처럼 한기평의 등급조정에 뭔가 '의도' 가 담겨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현대자동차는 다소 다른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기평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은 현대그룹 전체가 제때에 구조조정을 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올 상반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어나는 등 영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자동차 부문의 계열분리만 이뤄졌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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