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사이트’ 괄목 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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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같은 답변, “원래 그래요”

“초고속 통신망을 설치한다고 기사가 왔으나 PC 본체 뚜껑 여는 법을 몰라 강제로 드라이버로 열다가 PC를 고장냈다. 개통기사가 무수히 다녀갔지만 결국 개통하지 못했다. 항의하기 위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는데 점심시간 내내 안내 방송만 나온다. 나중에 통화했더니 ‘노동법에도 점심시간에는 밥 먹으라고 나와 있는데 뭔 말이 많으냐’고 한다. 결국 고장 낸 컴퓨터는 당장 바꿔주기로 했지만 2주 후에나 된다고 한다. 컴퓨터 살 때는 30분만에 샀는데 교체할 때는 2주일이 걸린다니. 모뎀도 안 주고 개통 확인서에 서명도 안 했는데 버젓이 개통됐다고 안내전화까지 온다.”

직장인 김모씨가 한 안티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김씨가 문제를 삼은 곳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얼마 전까지 자신이 다니던 옛 직장. 옛정을 생각해 참아보기도 했지만 분통이 터져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어떤 방법으로든 보상을 받겠다고 마음먹고 그가 찾은 곳이 바로 해당 회사의 안티 사이트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안티(anti)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기업이나 소비자 보호기관을 찾지 않는다. 직접 안티 사이트를 만들거나 해당 안티 사이트로 달려간다. 소비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인터넷만큼 빠르고 파괴력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안티 사이트에 참여하고 있는 네티즌들은 한결같이 소비자들에 대한 기업들의 무성의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무슨 질문을 해도 앵무새처럼 ‘원래 그래요’만 반복하는 상담원이 있는가 하면 전송속도가 느리다는 항변에 ‘그 정도면 빠르지 인터넷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냐’고 받아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당해본 사람들이 전하는 불만들이다.

▶왜 안티 사이트를 만드나

안티 사이트 중에서 최근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단연 초고속 통신망업체들이다. 지나친 확장 정책으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가입자를 유치하다 보니 서비스가 부실해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안티코넷, 안티하나로, 안티두루넷 등 안티 사이트가 없는 회사를 찾아보기 힘들며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같은 회사라고 해도 여러 개의 안티 사이트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국통신 ADSL 사용자 모임의 지동화씨는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면 컴퓨터 설정을 잘 못해서 그런 거라고 사용자에게 책임을 돌려버립니다. 심지어 어떤 기종을 쓰느냐고 물어봐서 펜티엄Ⅲ 500㎒를 쓰고 있다고 대답했는데도 컴퓨터 기종이 나빠 속도가 안 나온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는 또 “최고 속도가 몇 Mbps까지 나온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모뎀은 그 최고 속도의 절반밖에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이건 과장광고가 아니라 일종의 사기”라고 말했다.

“컴퓨터나 인터넷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보자들의 경우 서비스 센터의 말을 그대로 믿거나 그냥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회원들 중에는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 설정, 속도 측정, 애프터 서비스 등을 어떻게 하면 된다는 내용을 가르쳐주는 등 정보 공유를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통신 ADSL 사용자 모임의 경우 한국통신 내에서 활동하는 동호회 모임이지만 수많은 불만사례들을 다루다 보니 안티 사이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임에서는 결국 부적당한 모뎀에 대한 리콜을 얻어냈고 마케팅본부장 명의의 사과 공문까지 받아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람들

‘현대트라제’ 사이트는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에서도 차량시위를 벌였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안티 사이트들은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현대 자동차의 ‘안티 트라제(www.anti-hyundai.pe.kr)
’의 경우 실제 카탈로그와 다른 쇼바, 절반도 나오지 않는 연비 등을 문제삼으며 인터넷에서 시작,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 대대적인 항의 차량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31개의 개선 항목을 현대에 보냈으며 그 중 2차 점포코일 리콜, 2열시트 리콜, 점화코일 재리콜 명령을 건교부로부터 받아냈다. 한 명의 소비자가 할 수 없었던 일을 안티 사이트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다.

그밖에 거의 모든 기업과 상품에 대한 안티 사이트들이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룹 차원의 안티 사이트인 no현대, no대우, noLG, ng삼성 등도 있다. 삼성 안티 사이트의 경우 no삼성이라는 도메인을 선점당해, no good이라는 의미의 ng를 쓰고 있다.

최근에는 안티 사이트들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포털 사이트까지 등장, 화제가 되고 있다. 예잔티(www.yesanti.com)
는 안티 사이트의 연합 사이트. 건전하고 긍정적인 안티 운동을 위해 법률적인 지원도 준비하고 있다.

안티 사이트 개설 붐에 편승, 개인적인 공명심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안티 사이트들도 일부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는데도 계속 문제를 삼고 있거나 피해상황을 과장하며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다. 이런 사이트의 경우 전체 안티 사이트에 피해를 주는 일도 있다.

두루넷 고객지원팀의 김상엽 팀장은 “본사 차원에서는 안티 사이트들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수시로 모니터를 통해 지적사항을 고쳐나가고 있다”며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경우 경쟁사의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인용, 게시판에 올리거나 개인적인 공명심 때문에 상황을 부풀리고 과격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티 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게시물 중에서 욕설이나 비방은 일체 삼가도록 하고 있다. 안티 사이트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접근은 오히려 해가 된다”며 “안티 사이트들의 자기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요 안티 사이트

안티포스코 http://www.antiposco.nodong.net
안티 기아 http://www.antikia.systec.co.kr
안티카 http://www.anticar.co.kr
안티 트라제 http://www.antihyundai.pe.kr
안티 코넷 http://user.chollian.net/∼cholhwan
하나X http://my.netian.com/∼hanax
한국통신 ADSL 사용자 모임 http://sig.kornet.net/adsl
안티 드림라인 http://myhome.netsgo.com/taion
안티 두루넷 http://www.pusizen.com/∼thrunet-x
안티 후지 http://antifuji.net
안티 피라미드 http://antipyramid.org
사이버 행동 네트워크 http://n119.org
예잔티 http://www.yesanti.com

정재학 기자 <zeffy@joongang.co.kr> /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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