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과학기술협력 석학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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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개국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의 경제질서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 그 핵심은 과학기술분야다.

특히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자 21세기에 걸맞은 협력의 틀을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일보는 세기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국의 석학들을 초청, 3국간 과학기술 협력방향을 주제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중국측 석학 초청은 김홍일의원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참석자]
사 회〓김은영(金殷泳)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참석자〓양전닝(楊振寧) 미국 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저우광자오(周光召) 중국 전인대 상위 부위원장
김홍일(金弘一)민주당 국회의원
김진의(金鎭義)서울대 물리학과교수

▶사회〓동북아시아의 경제의 틀이 바뀌고 있는 만큼 한.중.일간의 협력 방향도 다시 짜야 한다고 본다. 과학자들이 모인 만큼 한.중간 과학기술 협력방안부터 짚어보자.

▶양전닝〓한.중간에는 과학기술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1992년 '한.중 과학협정' 을 체결, 신소재연구소.생명공학연구소 등의 교류와 청년과학자들의 교환이 있어왔다. 현재 한국의 과학자 유치활동으로 한국에 다녀온 중국 청년 과학자들은 1백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좀 더 실질적인 교류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저우광자오〓한국 기업들은 중국 상하이(上海)등 연해주에 주로 몰려 있다.

중국은 내륙 중서부지역 개발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시안(西安).청두(成都).중칭(重慶)등이 대표적인데 중국의 항공우주 등 핵심 연구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한.중간 민간기업이나 정부 차원의 과학기술 협력도 연해주쪽에서 내륙 과학기지 쪽으로 옮겨오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은 항공우주와 생명공학.광기술 등의 기초기술과 일부 첨단 응용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나 통신 등 국제 경쟁력이 있는 분야끼리 서로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진의〓과학기술 교류에는 과학자 교류가 핵심이다. 그런데 일본 과학자들은 한국이나 중국에 잘 가려고 하지 않으며 역시 오래 머물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중 간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저우광자오〓맞는 지적이다. 유럽 내 국가들은 경제력이나 환경이 비슷해 과학자 교류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중.일 3국간에만 해도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체류기간이 1년이 안되면 최소한 6개월짜리라도 인원을 늘리고 유치국가에서 체제비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책차원에서 지원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김홍일〓동서냉전 이후 세계는 블록화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경제통합, 나아가 정치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과학기술도 특정국가 위주의 '과학 이기주의' 로 흐르는 추세다. 동북아의 공동 발전을 위해 그동안 쌍무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3국간의 협력을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현재는 한.중, 한.일, 중.일 등 두 나라 간에만 주로 협력이 이뤄질 뿐 3국간 공동협력 모델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3국간에는 한자를 같이 쓰고, 문화.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은 데도 아직 이렇다 할 3국 공동협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각국 정치가.학자들이 좀 더 머리를 맞대고 숙의할 필요가 있다.

▶저우광자오〓두 나라 간에는 잘 되는 일도 셋이 모이면 안되는 게 많다. 3국간의 과학협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앞으로 3국이 협력하지 않고는 동북아에서 발생하는 환경.식량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예를 들면 외몽고지역에서 발생하는 황사문제, 중국 대기오염 문제도 결국은 한국과 일본의 문제가 된다. 중국의 대기가 오염된다면 바람을 타고 곧바로 한국과 일본으로 가지 않는가.

환경문제는 3국 관련 장관이 회합을 갖는 등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른 과학기술 분야도 서로 필요가 있으면 더욱 활발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양전닝〓물리학 분야의 협력을 예로 들면 일본의 적극적인 참여가 공동보조를 맞추는 열쇠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태이론물리센터에도 일본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서구 지향성이 강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3국간의 공동협력은 어느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즉 대규모 프로젝트를 어느 국가 주도로 하면서 인접국가를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유럽의 유레카 등이 한 모델이라고 본다.

▶사회〓유럽이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어 실질적인 과학기술협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동북아 3국도 정치적인 이해가 적은 순수과학분야의 베이징-서울-도쿄프로젝트(BESETO프로젝트)를 만들면 어떤가.

▶저우광자오〓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유럽의 공동프로젝트에는 유럽국가뿐 아니라 타지역 국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아.태이론물리센터 등 민간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종 학회.포럼 등을 발전시키는 방안이 학문의 발전이나 공조를 이루는 데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양전닝〓중국에 돌아가 과학기술 관련 정책 입안자들을 만나 순수과학분야의 3국 공동협력 의사를 전달하고 방안을 찾아보겠다.

▶김홍일〓3국이 '한.중.일 과학기술협력협정' 을 체결하고 각료회의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각국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현재의 쌍무협정을 발전시키면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본다.

한꺼번에 모두 이루려고 할 게 아니라 3~4단계로 나눠 추진해야 한다.
또 단일사업으로 3국 학자들이 상호 관심사를 공동 연구하도록 정부에서 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원탐사와 개발, 기상예측, 생물다양성 연구 등과 같은 과제가 예가 될 수 있겠다.

▶사회〓동북아 3국 중 어느 한 나라가 빈곤에 허덕이거나 환경적으로 극심하게 오염돼 있다면 그 영향은 인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중.일이 공동운명체로서 21세기 과학기술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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