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안, 정도로 가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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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02면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하는 경찰관들의 집단행동이 확산되고 있다. 수사담당 경찰관의 70% 선인 1만5000여 명이 수사직 포기 신청을 했다. 25일엔 100여 명이 충북 청원에 모여 수갑 반납식까지 했다. 퇴직경찰 모임인 경우회 간부들도 “경찰의 내사까지 검찰의 지휘를 받도록 한 것은 잘못”이라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경찰의 요구가 일면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총리실이 직권조정한 조정안을 보면 형사소송법 개정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검찰권이 강화됐다. 내사 문제는 검찰·경찰 모두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데 경찰의 내사만 검사의 통제를 받고 검찰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게 돼 있다. 조정안이 국민인권을 고려했다기보다 검사의 수사지휘권만 확대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형소법 개정 취지가 검찰의 전횡을 막는 데 있다면 이런 조정안을 만들려고 총리실이 몇 개월씩 끙끙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대응 방식엔 문제가 있다. 몇 달 전에는 그리스 경찰관들이 시위를 벌이는 외신 사진이 보도됐다. 아테네에서 1000여 명의 경찰관·소방대원·해안경비대원이 공무원 제복을 입고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찰의 의사 표시가 그리스 경찰과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집단으로 실력행사를 벌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가뜩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싸고 각종 시위와 집회로 사회가 어수선한 마당이다. 이를 막아야 할 경찰이 나서서 집단행동을 하는 모습이니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경찰 지휘부는 “일선 경찰의 항의 표시마저 막을 수는 없다”며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듯한 인상이다.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정도가 심하다.

이번 조정안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갈등 조정 능력이 남아 있는 건지 회의감마저 든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행정도 주민 간, 집단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점을 이끌어 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의 조정력은 기대 이하다. 수사권 조정안은 사안의 성격상 어느 한쪽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토록 오래 고민해 내놓은 해결책이 이 수준이니 말이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감기약 수퍼마켓 판매도 같은 맥락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83%가 수퍼 판매를 지지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몇 달 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시만 해놓고 손을 놓아버린 인상이다. 결국 이 법안은 약사회의 눈치를 살피던 여야 의원들의 외면으로 회기 중 처리가 무산됐다. 어느 정권이든 하산 길은 힘들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부는 정도대로,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게 레임덕을 줄이는 최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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