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북한은 애초부터 핵포기 생각 없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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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13면

북한 핵문제는 1989년 등장 이래 꾸준히 악화돼 왔다. 6자회담도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6자회담 첫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전 대사는 아예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그의 책 북한은 현실이다(21세기 북스)에서 말할 지경이 됐다. 체험에서 나온 얘기다. 이런 정서가 6자회담 담당 부서에 깔려 있기는 해도 그런 진단은 너무 솔직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지금까지의 6자회담 수석대표 중 처음 거론하는 현실론이다. 직접 들어봤다.

『북한은 현실이다』펴낸 이수혁 전 6자회담 대표

-북한이 핵을 포기 않는다면 6자회담은 뭔가.
“자괴감이 든다. 그동안 쇼를 했느냐는 것이니까. 사실 회담 초기 2년간 핵포기를 기대했다. 당시엔 핵실험도 안 했고, 폐기하지 않으면 미국 제재가 강해진다는 걸 북도 알고 있었다. 2차 핵위기의 원인인 농축우라늄도 북한은 미국의 조작이라고 부인하고 있었다. 여러 정보가 농축을 뒷받침했지만 그럼에도 전망이 있었다. 6자회담의 북한 수석대표인 김영일(1차), 김계관(2차)의 태도에 이전 남·북·미·중 4자회담 때와 달리 진정성이 있었다. 우리 발언을 경청하고 토씨 하나 안 고치고 평양에 보고한다고 했다. 우린 북한 외교부가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해줬다. 예를 들어 1차 회담 때 북한은 미국과의 불가침 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그래서 ‘미국이 불가침 협정을 맺은 사례가 없다. 정부가 해도 미 상원이 비준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측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야기는 사라졌다. 그런데 두 차례 핵실험 뒤 외교 협상으론 안 되겠다, 북한은 핵무기를 생존에 불가결한 것으로 본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국정원 해외담당 1차장을 한 시기는 1차 핵실험 이후인데 남북 간에 합의가 이뤄지긴 했지만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북이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이 바뀐 게 아니라, 우리가 북한이 변할 수 있다고 본 거다. 돌이켜보면 북한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핵실험을 두 번 한 나라에 핵포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북한의 핵실험에 우리가 달리 대응했으면 달라졌을까.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가 뼈아픈 성찰을 하지 않았다. 우리 조치가 가져올 결과를 치열하게 고민한 뒤 대응했어야 했는데 책임자들이 그런 두려움을 직접 느껴봤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정부는 일시적·국내적 조치를 했고 안보리 제재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2차 핵실험을 막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6자회담 수석대표도 교체하고, 조금 아팠더라도 더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북한을 응징하면 전쟁 나는데’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족쇄다. 핵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국민 사이에 피해를 감수하는 컨센서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도자들의 단호함도 있어야 하는데 위기 때마다 보여주지 못해 북한이 그걸 약점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연평도 사건 때 수퍼에서 사재기할 정도는 돼야 하
지 않나.”

-국정원 1차장 때 핵 관련 일은 안 했나.
“당시엔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계좌를 폐쇄하는 문제,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복잡했다. 사실 미국이 BDA에 올인하는 게 불편했다. 그게 핵문제와 바꿀 일인가. 내가 수석대표 때도 미국은 마약, 위조지폐 문제를 이슈화하려 했다. 그러면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할 수 있어 핵문제에 올인하자고 했다. ”

-당시 미국 내 사정이 핵 문제 해결을 꼬이게 한 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때 네오콘과 온건파 다툼이 심각했다. 북한 경수로 문제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미 간에 격론이 벌어졌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은 ‘북한 경수로엔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려 했다. 북한이 의심스러우니 향후 경수로의 평화적 이용도 막겠다는 거다. 우린 반대했다. 한국은 이미 17억~18억 달러를 들인 마당이었다. 온건파 켈리는 워싱턴과 수위를 조절해 보겠다고 했는데 워싱턴에 도착하기도 전에 네오콘인 존 볼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은 ‘북한 경수로의 미래는 없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협상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면 북한 핵과 공존해야 하나.
“이미 우린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산다. 6자회담도 지금 안 되고 있지 않은가.”

-저서에서 중국이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한 이유는.
“중국이 북한을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초기 현장에서 중국의 모습은 북한 비핵화에 다른 생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반북한 정서가 많았다. 1차 핵위기 때, 제네바협상 때, 4자회담 때 줄곧 그랬다. 사석에서도 ‘북한이 남한에 통일돼야 한다’ ‘북한 체제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한은 까다로웠다. 6자회담 기간에 나는 중국 수석대표 왕이와 김계관을 설득하려고 찾아갔다. 그런데 김계관은 왕이에게 문도 안 열어 주고 부하직원에게 ‘면담을 거절한다’는 말을 전달시켰다. 중국이 한국과 손잡고 핵폐기를 요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때로는 중국이 굴욕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북한이 반발했었다.”

-요새 중국은 완전히 북한 편이다.
“중국은 힘이 세지고 미국이 약화될수록 북한의 효용성을 더 실감하고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남한은 이러나저러나 미국과 같이 간다. 그런데 한국 주도로 통일 돼 인구 7000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옆에 생기면 불어닥칠 한국과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복잡해진다. 그래서 현재의 북한이 성가시더라도 옆에 있는 게 중요하게 된다.”

-중국에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래도 계속 얘기해야 한다. 뻔하다 해도 물러서면 안 된다. 의존하기보다 중국이 취해야 할 입장을 얘기해 주는 것이다. 북한에 우리 의견이 들어가기 위해서도 계속 환기시켜야 한다.”

-어쨌거나 6자회담은 의미가 없어졌다.
“다른 대안이 없다. 국제적인 틀은 만들긴 어렵지만 있으면 소집은 쉽다. 핵 문제가 있는 한 이 틀을 인정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커질수록 북핵 문제가 더 위험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위험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럴수록 군사 대결로 갈 가능성은 없다. 전쟁구도는 미·중 양측에 유리하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가지 않게 하는 묵시적 양해가 있을 수 있다. 합의는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한반도에서 전쟁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게 과도하게 발전되면 통일은 멀어지고 분단 영구화 가능성이 생긴다.”

-북한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러시아의 한 전문가는 조만간 붕괴 가능성을 말한다.
“북한 주민들은 일제 이후 오늘까지 자유라는 걸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니 의외로 견고해 보인다. 휴대전화 늘어나는 것들도 장기적으로는 영향이 있겠지만 이는 실생활 효용 가치가 커진 것이지 사상적으로 커지는 것도 아니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체제에서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체제에 불이익당하는 이들이 접근할 수단이 아니고 체제 안주 세력이 누리는 소셜네트워크다. 우리가 너무 과잉해석하는 것 같다. 김정일이 3년 안에 죽고 5년 안에 통일된다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지만 위험하다. ‘3년’ 시간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따라갔던 미국 의사가 말한 것이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진찰도 안 해 보고 겉만 보고 여기에 기초해 희망적 생각으로 3년, 5년 안에 통일된다는 얘기가 들렸다. 이게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리=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이수혁 외시 9기(75년), 6자회담 수석대표, 독일 대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해외담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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