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어른들이 안 해서 … ” 흑백 차별에 항거한 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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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세기 중반 미국의 흑인 전용 극장. 인종 분리 정책에 따른 불평등이 만든 풍경이다.

열다섯 살의 용기
필립 후즈 지음
김민석 옮김, 돌베개
212쪽, 1만원

청소년은 때론 어른보다 용감하다. 세상의 때가 덜 묻어서다. 그러나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1955년 3월 2일. 미국 앨라배마주의 주도(州都) 몽고메리에서 열다섯 살 흑인 소녀 클로뎃 콜빈이 경찰에 체포됐다. 버스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다. 당시 몽고메리 시내버스의 앞쪽 네 줄 10명 자리는 백인석이었다. 백인석이 모두 찼는데 백인이 한 명 승차하면, 바로 뒷줄의 흑인들은 모두 일어나야 했다. 백인이 흑인과 같은 줄에 앉을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내버스 법률이나 조례에 따르면 1900년부터 빈 좌석이 없을 경우 흑인은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었지만, 몽고메리의 관습은 공고했다.

 클로뎃 콜빈은 양보하길 거부한 최초의 흑인이었다. 그러나 몽고메리의 흑인 지도자들은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촉발시키기엔 클로뎃이 ‘자제력이 부족한’ 어린 아이라 생각했다. 클로뎃 사건이 일어난 지 9개월 뒤,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같은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본격적인 버스 보이콧 운동이 시작됐다.

 흑인과 백인 구역을 나누는 ‘인종분리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이 연방법원에 제기됐고, 클로뎃은 법정에서 당당히 증언한다. 56년 인종분리법은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이 내려진다. 그러나 흑인 운동사에는 백인에게 양보하길 거부한 최초의 성인이었던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만 기록됐다. 클로뎃에게 남은 건 ‘경찰관 폭행’에 대한 유죄 꼬리표와 퇴학. 변호사와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던 소녀의 당찬 꿈은 꺾였다.

 20년이 지난 뒤에야 한 신문사 기자가 로자 파크스 이전에 클로뎃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조용히 지내는 게 몸에 밴 클로뎃은 2005년에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50주년’을 기념해 모교 강당에 선다.

 “내가 했던 게 정의를 향한 최초의 외침이었고, 커다란 외침이었어요. 어른 지도자들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한 거예요.”

 지은이는 클로뎃과 주변 인물의 증언을 충실히 취재했다. 가슴이 뜨거워지게 하는 이야기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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