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한국일탈'] 上. "삶의 질 찾아 더 늦기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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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代)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진 고학력.고소득 엘리트 그룹에서 이민희망자가 줄을 잇는 등 이민시장에선 30대가 주류로 등장했다.

'노인층과 청년층을 연결하는 허리세대가 빠져나간다' 는 우려와 '역동성 강한 30대가 세계화해 나가는 과정' 이라는 긍정적 시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 이탈에 동참하는 30대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 고학력.고소득자가 떠난다〓지난 15일 온누리이주공사가 서울 시내에서 연 캐나다 이민설명회. 10평 남짓한 설명회장엔 넥타이를 맨 30대 직장인 30여명이 발 디딜틈 없이 들어찼다.

이날 참석자는 대부분 인근 대기업 본사 근무자들로 2시간여의 설명회 내내 자리를 지키며 이민정보를 꼼꼼히 메모했다.

주최측의 설명이 끝나자 "캐나다와 한국간에 이중과세방지협정이 체결돼 있느냐" "캐나다는 출산율이 낮아 자녀수가 많을수록 우대한다는 게 사실이냐" 는 등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절반 이상은 캐나다인 이민법 전문변호사에게 개인면담까지 신청했다.

온누리이주공사의 문형규 이사는 "이민을 희망하는 30대의 평균적인 모습은 초등.중학생 자녀를 둔 대리.차장.과장 등 중간간부들" 이라며 "특히 하이테크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지닌 고소득 전문직들이 늘고 있다" 고 말했다.

미국 비자 발급 통계도 이민자의 고학력.고소득화 현상을 뒷받침한다. 대졸 이상 전문직 경력자가 주로 받는 단기취업 비자(H-1b) 발급건수는 1998년 9백46건, 99년 1천4백56건에서 올 상반기에만 8백6건으로 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고학력자가 적은 육체노동자들이 받는 E-3비자는 96년 2백70건에서 99년 1백98건으로 줄어들고 있다.

하나은행 이민상담센터 유승호 대리는 "외환송금을 위해 은행을 찾는 30대 이민자의 경우 보통 3억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다" 고 말했다.

◇ 왜 가나〓 "현재 잘 나가는 간부지만 불안하다. 승진에 초조한 선배들 모습이 몇년 후엔 내모습이 될 것 같아 괴롭다. 초등학생인 3학년 막내조차 벌써 과외니 학원에 시달려 풀이 죽어있다.더 늦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

8월 출국 예정인 한 통신업체 과장 李모(36)씨의 이민 동기다.

부산에서 기계 제작업체를 운영하다 최근 이민 대열에 합류한 朴모(37)씨는 "먹는 물이 안전하지 않고, 도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갈수록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다" 고 고백했다.

한국이주공사 임삼렬 사장은 "30대 이민에는 치열한 경쟁, 열악한 교육환경 등 '삶의 질' 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적 스트레스' 를 탈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 말했다.

벤처기업가 朴모(38.경기도 고양시)씨는 코스닥 등록을 앞둔 건실한 사업체를 정리하고 캐나다 이민수속을 밟고 있는 경우.

朴씨는 "국제통화기금(IMF)이후 부도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못이루다 이민을 결심했다" 며 "기업을 꾸리면서 겪은 우리 사회의 불합리에 넌더리가 난다" 고 말했다.

조기유학붐도 이민을 부추기고 있다. 호주 이주공사 유한덕 이사는 "자녀의 유치원 입학을 앞둔 30대의 경우 애들만 보내기엔 불안해 아예 처음부터 전가족이 움직이는 이민을 택하는 경향이 짙다" 고 밝혔다.

공기업.대기업 등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도 이민 환경을 제공했다. 세촌해외이주컨설팅 이상헌 과장은 "자동차업계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 해외진출을 원하는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갑자기 늘었다" 고 설명했다.

30대의 역동성도 한 몫 한다. 대유이주공사 김세진 지사장은 "30대들은 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해외어학연수와 배낭여행 1세대로 외국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며 "이민상담자의 90% 이상이 배낭여행이나 어학연수를 경험했다" 고 소개했다.

기획취재팀〓이상렬.서승욱.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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