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증거 없이도 인화학교 직원 처벌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영화 ‘도가니’의 실제 배경인 광주광역시 인화학교의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던 전직 교직원 두 사람이 사법처리된다. 이는 경찰이 성폭행 사건 당시의 직접 증거가 아닌 피해자의 후유증을 근거로 처벌을 추진하는 것이라 유사 사건의 처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인화학교의 원생이었던 A양(당시 17세)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성폭행한 뒤 감금한 혐의(강간치상)로 교직원 B씨와 A양을 강제추행한 교사 C씨를 형사처벌할 방침이라고 18일 밝혔다. 교직원 B씨는 2004년 4월 당시 A양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는 영화 도가니에도 주요 장면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B씨는 2006년 3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광주지방경찰청이 성폭력 피해자 8명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 치료를 의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을 치료한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의진 교수가 ‘피해자에게 심각한 성폭행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신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A양을 관찰한 결과 성폭행과 성추행으로 고통받고 있고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치료를 한 8명 중 6명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의사의 진단을 통해 A양이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것이 확인된 만큼 해당 교직원을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인 A양이 가해자가 두 사람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강간치상 등의 공소 시효(10년)가 아직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2006년과 달리 성폭행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이 있는 만큼 사법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 주 진단서가 도착하는 대로 두 사람을 입건해 사법처리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9일부터 인화학교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 특별수사팀은 이날 인화학교와 학교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우석 관계자 등 14명을 입건했다. 한편 광주광역시는 이날 우석의 법인 허가를 취소했다.

광주=유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