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편지〈닭과 비〉

중앙일보

입력

찢어진 우산을 쓰고 목욕탕에 다녀옵니다. 아카시아 가로수 아래로 닭 몇 마리가 비를 피해 뛰어갑니다. 웬 아파트 단지에 닭들일까? 기묘한 느낌이 들어 우산을 받고 한참 비에 젖어 떨고 있는 닭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집 할머니가 아파트 앞 화단에 키우나 보다.

어쩌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비를 피해 허둥지둥 달아나는 닭들을 목격하곤 합니다. 작년에 강화 석모도에 갔다가 찻집에 앉아 있는데 통유리창 밖으로 닭들이 마구 뛰어 달아나더군요. 비가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묵은 필름을 되돌려보는 느낌이 들더군요.

닭과 비는 내게 하나의 꿈처럼 늘 되풀이되곤 합니다. 비가 오면 곧바로 닭이 떠오를 지경입니다. 어렸을 때는 모란밭이나 붉은 석류나무 밑으로 여우비를 피해 황급히 뛰어들어가던 그 닭들.

초등학교 이학 년 때던가, 온양에 살 때입니다.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는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닭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닭이 아니라 멕시코산 투계였습니다. 키가 크고 목이 길며 울긋불긋한 색깔에 다리가 훌쩍 긴 놈들이었는데 오로지 싸움을 하기 위해 태어난 전사처럼 보였습니다. 개나 고양이도 그 닭은 피해 다닐 정도였습니다.

저녁마다 아버지는 그놈들에게 싸움을 붙여놓고 마루에 앉아 느리게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닭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는 결코 싸움을 그치지 않습니다. 사생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고 있는 쪽도 마찬가집니다.

목이 대롱대롱 끊어질 판인데도 상대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듭니다. 개싸움보다 더 잔혹하고 냉엄합니다. 싸움 시간도 대략 한 시간 정도로 아주 깁니다. 쉬는 시간도 물론 없습니다. 한번 붙으면 막바로 전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싸움이 끝난 마당은 피로 낭자합니다. 닭도 피가 빨갛기 때문에 아니할 말로 살인 현장 같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진저리를 치며 마당을 쓸고 소금을 뿌리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 닭을 들고와 도전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개는 고추장을 잔뜩 먹여 가지고 왔는데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결같이 목이 끊어져 닭도리탕으로 변해 그날 밤 소주 안주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우리 집 마당은 마을 닭들의 형장이었던 것입니다.

투계를 하는 저녁이면 트럭을 몰고 지나가던 미군들이 내려와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위스키를 들고와 아버지와 주거나받거니 마시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위스키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먹어 봤습니다. 목구멍이 탈 정도로 무척 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에 비해 아주 일찍 위스키 맛을 본 것입니다.

아버지는 미군부대 출신이었고 멕시코산 닭도 그쪽을 통해 밀수(?)해 들여온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웃는 것을 결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말만큼 웃음도 인색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닭싸움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며 마당을 내려다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아직도 선연히 기억합니다. 마당에 툭툭 떨어지던 피처럼 붉은 서쪽 하늘의 노을도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투계에 몰두했던 것일까. 혹시 고독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굽은 등은 언제나 쇠처럼 외로워 보였습니다. 혈투. 피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독한 외로움.

훗날 나는 아버지가 평생 허무와 권태에 빠져 몸부림치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처절히 외로운 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투계 열 마리를 군사처럼 거느리고 날마다 허무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투계들은 싸움을 못하고 뒷마당 그물 속에 어둡게 한데 모여 서서 눈알만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이 왜 그리 죽음처럼 고독해 보였던 것인지.

그런데 내가 어린 날 보았던 그 잔혹한 장면은 선연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펄쩍펄쩍 뛰며 낭자하게 공중으로 피를 흩뜨리던 광경이 내겐 참혹하리만치 아름다운 광경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왜일까. 나 역시 삶이 허무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걸까.

시골에 가면 아직도 장닭이라고 하는 큰 수탉이 있습니다. 양계장에서 식용으로 사육하는 흰 닭들과는 태생부터가 다릅니다. 가히 신화적인 풍모와 위엄을 갖추고 있습니다. 노을이 질 때면 그놈들은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앉아 마을을 무연히 내려다봅니다. 외로운 무사처럼 말입니다. 어린 날의 내 고독했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아버지가 키우던 멕시코산 투계들은 어느 겨울 개장수에게 팔려갑니다. 닭장수가 아니고 왜 하필 개장수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뒷마당 그물 안에 키우던 닭들은 첫눈이 내리던 날 일제히 동상에 걸려 버렸고 아버지는 미련없이 그놈들을 용도 미상인 채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중 한두 마리는 박제가 되어 어느 집 장식장에 먼지를 쓰고 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듬해부터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사냥에 열중했는데 투계를 지휘하고 운영하던 시절에 비해 한결 맥이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닭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랬던 게 아니라 그냥 개고기를 먹지 않듯 닭고기를 먹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하나. 연애를 할 때마다 나는 기이하게도 닭띠 여자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것도 대개는 비오는 날에 말입니다. 헤어질 때도 예외없이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생에는 그런 우연이 가끔 겹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녀들은 닭띠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닭고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었습니다. 백숙이든 튀김이든 도리탕이든 가리지 않고 닭을 먹어치우는 여자들이었습니다. 평소엔 다들 얌전한데 닭고기를 먹을 때는 왜 그토록 탐욕스러워지는지 여직껏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닭 요리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도 그중 한 여자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빗속으로 총총이 달아나는 닭들을 보면 과거에 헤어진 여자들이 생각납니다. 그중에는 아닌게아니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간 여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는 한번도 필사적으로 싸움을 걸어오지 않고 그리 쉽게 돌아서 간 것일까. 내가 상대가 못 된다고 판단한 걸까. 그렇다면 눈물은 왜 흘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입니다.

깃을 잔뜩 부풀리고 싸움을 하는 닭들은 아름답습니다. 한편 싸움을 끝내고 빗속으로 총총 달아나는 닭들은 적막해 보입니다. 닭은 아직까지 내게 하나의 의문부호입니다. 싸움에 능한 어여쁜 여인처럼 말입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닭띠 여자들 만나 피가 튀고 목이 흔들리는 처절한 싸움을 해볼 수만 있다면......

언젠가 종로2가에서 신호등을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혼자 뒤뚱거리며 태연하게 이쪽을 향해 건너오는 닭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요. 그때 나는 불현듯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 닭은 혹시 내가 전에 만났다 헤어진 여인이 아닐까? 그 여름 비내리던 종로2가에서 헤어진...... 그날 밤 혼자 위스키를 마시고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닭과 비. 이런 상념에 젖어 있던 하루였습니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다음 주에나 돌아오겠군요. 그날도 비가 내릴지 말지. 그럼 어느 신호등 앞에 닭이 한 마리 서 있을지 없을지.

서울은 장마철입니다. 내겐 장마철이 닭의 계절이어서 자주 생맥주에 튀김닭을 먹는 때이기도 합니다. 투계에 골몰했던 어린 날의 고독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혹은 헤어진 닭띠 여인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그때 나는 어두운 뒷마당 그물 속에 닭들과 함께 웅크리고 서 있었지.******

〈지난 리스트 보기〉
〈작가 인터뷰및 프로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