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 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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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이후 본격적인 입시전쟁을 치러야 하는 여느 수험생들과 달리 일찌감치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이들이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생들이다. 특히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전형의 문턱을 넘은 학생들은 벌써부터 대학 캠퍼스를 누빌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 뒤엔 그만한 노력이 있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독학으로 배운 컴퓨터 실력으로 로봇 대회 우승

중앙대 다빈치형인재 전형으로 컴퓨터공학부에 합격한 정성우(경기 안산동산고 3)군은 고교 입학 후 로봇연구 동아리 부원으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로봇’을 개발해왔다. “특정 컴퓨터 프로그램을 응용해 내가 원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지난해 11월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공모대전 주니어부문 로봇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점심·저녁식사 후 동아리 부원들과 만나 로봇 개발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주말에는 로봇 관련 지식을 꼼꼼히 익혀 얻은 결과였다.

정군은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 무릎에 앉아 4세 때부터 눈·귀동냥으로 컴퓨터 지식을 익혔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엔 각종 컴퓨터 관련 서적을 접하며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꿈도 키웠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집에서 컴퓨터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실망이 컸던 그는 “동사무소에 가면 컴퓨터를 공짜로 쓸 수 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방과 후면 동사무소로 달려갔다. 6학년 때 정보처리기능사 등 컴퓨터 관련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고, 중학교 때는 독학으로 웹과 OS 구조, 소프트웨어공학 분야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그동안 갈고 닦은 컴퓨터 지식을 바탕으로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인터넷 노트장’을 활용해 로봇 연구과정과 결과물을 기록했고, 로봇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로봇 관련 용어 하나하나를 정리했다. 지난해 로봇공모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로봇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예상보다 못한 성과를 거둬 실망하기도 했지만, 2~3개월에 걸쳐 하나의 로봇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마냥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3이 되면서 수학 공부에도 매진했다. 컴퓨터와 로봇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를 하려면 수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3월 모의고사에서 백분위 69%였던 그의 수리 ‘가’형 성적은 7월 모의고사에서 92.42%까지 뛰어올랐다. 중앙대 차정민 입학사정관은 “불우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힘으로 각종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것은 물론 관련 자격증까지 딴 점으로 미뤄 ‘적극성’이 인정됐다”며 “내신은 미흡하지만, 단기간 수학성적이 향상된 점 때문에 ‘발전가능성’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정군은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해주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맞는 정보를 가공해내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요. 컴퓨터의 정보처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현재는 정보처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인간이 직접 입력해야 하잖아요. 아버지(※그의 아버지는 지체장애인이다)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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