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시위 배상금 2억 포기 … 이상한 서울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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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 참가자들이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행사 무대로 진입하고 있다. 시위대의 무대 점거로 5억8000만원이 투입된 개막행사는 취소됐다. [연합뉴스]
박운기 서울시의원(左), 안진걸 참여연대 팀장(右)

서울시가 축제 개막식 무대를 점거해 행사를 망친 시위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기고도 돈 대신 사과문을 받고 손해배상 청구를 포기했다. 불법 시위대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 엄격히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불법을 용인했다는 지적이다. 2009년 5월 2일 오후 서울광장에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을 보기 위해 많은 시민이 몰렸다. 개막식이 열리기 전에 갑자기 100여 명이 무대를 점거했다. 이들은 광우병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위해 모인 시위대였다. 시위대의 무대 점거로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은 취소됐다. 개막식 준비에 들어간 5억8000만원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서울시는 불법 점거를 한 시위대 중 허현무 민주노총 정치국장 등 8명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불법을 엄단하고 시민 세금을 낭비하게 한 시위대에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였다. 1심에서 서울시와 행사를 주관한 서울문화재단이 승소했다. 법원은 “허씨 등은 서울시에 3000만원을, 서울문화재단에는 1억7487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시위대는 곧 항소했지만 지난해 12월 기각됐다. 이들 중 허 국장 등 5명이 올 1월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지난 8일 상고 포기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이들로부터 2억487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하지만 이들은 서울시에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서울시가 돈 대신 사과문을 받고 손해배상 청구를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3월부터 박운기 시의원(민주당)과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팀장 등의 주도로 시위대와 서울시의 협상이 시작됐다. 박 시의원은 시위대와 서울시의 협상을 중재한 이유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일한 이력을 보고 찾아온 시위대 대표를 대신해 협상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박 시의원의 시의회 사무실에서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상은 지난 5월 시위대가 사과문을 제출하고 상고 포기서를 내면 서울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허 국장 등 8인은 지난 7월 29일 ‘사과의 글’을 서울문화재단에 등기로 송달했다. 사과의 글은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행사를 방해할 목적은 없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을 받은 서울문화재단은 곧 이사회를 열고 받을 돈을 포기하는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이번 결정이 불법을 용인했다는 지적이 일자 서울시와 문화재단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주관한 서울문화재단의 김홍남 경영기획본부장은 “서울시와 논의 끝에 시위대가 학생이거나 직업이 없어 강제 구상권을 행사해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협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무적인 협상 창구는 서울문화재단이었기 때문에 청구 포기 결정이 서울시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정목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원의 판결로 피해를 본 시의 재산 일부를 회수할 기회가 생겼는데도 이를 포기하는 것은 시 공무원의 직무 유기이자 권한 남용이다.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불법을 뿌리 뽑아야 할 서울시가 불법을 조장한 꼴”이라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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