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스탠퍼드대학이 보여준 부의 선순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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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요즈음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장사치와 다름없다는 비난이 드세다. ‘소를 팔아 자식 대학을 보낸다’는 의미의 우골탑이란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학생 신용불량자’란 말이 대신했다. 과도한 대학 등록금 부담을 의미하는 말이다.

 상당수 대학이 겉으로는 “재정상황이 어렵다”며 학생들로부터 등록금을 과하게 챙겨온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설립자가 존경받는 이유는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들을 길러내는 데 개인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정부로부터도 각종 세금을 면제받고 국민의 혈세로 지원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간 대학들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면서도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학생들을 쥐어짜온 일부 대학의 후안무치에 국민이 분노하고 실망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선진국의 모범적 대학을 거울 삼아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구글, 선마이크로시스템스, 휼렛패커드, 야후, 시스코시스템스, 넷스케이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회사 설립자들이 모두 같은 대학 교수거나 졸업생 출신이란 점이다.

 이들은 어쩌면 미국 서부 명문대학인 스탠퍼드대 설립자인 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dford)와 이 대학 출신으로 학장이 된 프레드릭 터먼(Frederic Terman)이 아니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르랜드 스탠퍼드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캘리포니아 철도 건설과 운영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여느 미국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을 유럽으로 유학 보냈다가 장티푸스로 독자인 아들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대학이 스탠퍼드다. 스탠퍼드대의 정식 명칭이 ‘르랜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Leland Standford Junior University)’인 이유다. 창업자는 자신이 사업을 일군 캘리포니아주에 대학을 세웠다. 일종의 사회환원 차원이다.

 아버지가 스탠퍼드대 교육심리학 교수였던 프레드릭 터먼은 이 대학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이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25년 이 대학 교수로 취임해 전자공학 연구개발과정을 개설했다. 오늘날 유명한 휼렛패커드사의 창업주들인 윌리엄 휼렛(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그의 제자다. 그는 학생이었던 이 두 사람을 설득하여 회사를 설립하게 하고 자신도 이들의 회사에 투자했다. 또 1951년에는 오늘날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지역의 모태가 되는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Standford Research Park·당시에는 Standford Industrial Park)를 만들어 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에 시설을 리스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늘날 각국 대학에 존재하는 벤처 인큐베이터 제도의 원조인 것이다.

 부의 진정한 재투자 형태로 아들 대신 후세를 생각한 한 명의 부자와 유능한 그 대학 졸업생이 오늘날 미국을 먹여 살리는 신성장동력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리고 이 대학의 이런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졸업생들은 성공한 뒤 자신들의 재산을 후배 창업자들을 위해 대학에 기부하고 있다. 사회적 선순환의 고리가 생겨난 것이다. 스탠퍼드대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문대’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 스탠퍼드대가 갖는 이러한 생산적 토양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대학에서 벤처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두고 있다. 여러 분야의 기업가들과 전문가를 초빙하여 벤처 창업 과정을 개설 운용한다. 이들 과정은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실제 창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성공한 졸업생들이 조금씩이나마 후배 양성을 위해 장학금 등을 기부하기도 한다.

 이들의 숨은 노력들이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대학들의 이기적 태도로 인해 가려질까 두렵다. 대학이 나름의 교육 철학과 도덕심을 잃을 때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대학은 한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을 길러내는 곳인 동시에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곳이다.

 청년실업, 경기불황 등 사회 곳곳에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다. 압축성장의 부작용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때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대학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대학이 바로 서지 않으면 글로벌 무한 경쟁 속에서 국가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돈 잘 버는 대학보다는 후학을 잘 길러내는 대학을 기대하는 이유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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