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하와이에서 미·중이 다툰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지난주 하와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선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외교 공세를 편 것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제시한 어젠다가 “지나치게 야심적”이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중국 당국자들은 친환경적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세를 낮추자는 제안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까지 사사건건 미국에 반기를 들었다. APEC에서 미·중이 공개적으로 부딪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APEC을 통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려 애써왔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막후 힘겨루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제 중국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대립적으로 돼가는 미·중 관계에서 자유무역체제 문제를 새로운 전선(戰線)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최근 미국이 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기 미 정부는 대외무역 정책이 불분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에 반대했으며 취임해서도 노동조합의 정치적 지지를 의식해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비준을 밀어붙였다. 이어 하와이 APEC 정상회의에 맞춰 TPP 문제를 진전시켰다. 그러자 미온적이던 일본도 신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TPP 협상 참여 의사를 밝혔다. 미국과 TPP 협상에 참여해온 8개국의 경제 규모가 각각 미국의 1개 주 정도인 상황에서 TPP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셋째 경제 대국인 일본이 가담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이후 한국의 참여 가능성도 커지는 데다 캐나다도 적극적인 참여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6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중국을 제외한 APEC 주요 회원국들이 TPP에 가담한 것이다. 심지어 대만까지도 관심을 보인다.

 가뜩이나 포위당하는 것에 대해 피해의식을 가진 중국으로선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주변국들과 갈등하면서 관계가 악화된 데 이어 벌어진 이번 일이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아시아 각국과 무역협상을 벌이고 있었으며 금융위기로 위기를 겪은 미국이 오히려 아시아에서 소외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TPP 협상이 갑작스럽게 급진전한 것이다. 중국 당국자들은 APEC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중국이 TPP에 초대받지 못했으며 어느 나라도 제외돼선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미국은 TPP가 중국을 포함한 APEC 회원국 전체를 아우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광범위한 자유무역지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바로 이 점이 중국이 불편하게 느끼는 대목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경제는 잘나가고 미국과 유럽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상과 대만과의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서 유리한 입장이었다. 이 모든 협상에서 중국은 온갖 국내 문제에서 예외 적용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TPP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처럼 고도의 자유무역협정이 확대되면서 중국은 한국·일본 등과 협상에서 협상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과 교역을 하는 모든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중국 시장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대가로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중국 정부의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들 사이에 악명이 높다. 또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 노동자 정책, 부정부패, 저환율 정책 등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TPP의 장기적 효과는 단지 관세 인하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통합하는 21세기적인 교역과 투자의 룰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국도 이 모든 것들로부터 혜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TPP는 1930년대 만들어진 폐쇄적인 무역 블록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아시아·태평양 무역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한·중·일 자유무역협상, 나아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등등에 자극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무역정책을 변화시켰듯이 어떤 나라도 자유화의 흐름에서 낙오되기를 원치 않기에 무역 자유화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무역 자유화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것이 정치적 경쟁에서 앞서는 것보다 지역 통합과 번영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핵심적 위치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계기로 한국의 협상력과 리더십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