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잃으면 죽는다 … 후송 때 혀 깨물며 되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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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가운데)이 부산시 동구 남해해양경찰청을 방문했다. 석 선장이 특강에 앞서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뒤 김충규 남해해경청장(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석 선장의 부인 최진희씨는 눈물을 닦고 있다. [송봉근 기자]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이 14일 처음으로 강연을 했다. 부산의 남해해양경찰청 1층 강당에서 해양경찰관 150여 명 앞에 섰다. 9개월 입원했던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을 퇴원한 지 열흘 만이다 지팡이를 짚었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남해해경청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던 해적들을 수사했던 곳이다.

 “정신을 잃지 말자.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그의 강연의 화두는 이런 말로 요약됐다. 그는 아덴만 작전 때 총상을 입고 후송될 때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고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해양경찰관들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책임의식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그는 피랍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부터 해적들의 대항 과정, 구출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설명했다. 피랍 순간부터 수사 결과 발표까지 동영상을 틀기도 했다. 석 선장이 납치 이후 선박을 지그재그로 몰면서 시간을 끌었고, 해적들 몰래 엔진오일에 물을 타 배를 정지시킨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기지와 배짱을 발휘한 배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피랍됐을 때 해적들이 국적이 어디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하니까 해적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코레아 코레아’라고 했다. 내 귀에는 ‘봉이다. 돈이다’라고 들렸다. 그때 내가 저들에게 굴복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몇 번이나 해적들이 손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하며 “유 킬(죽이겠다)”이라고 협박했지만 그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석 선장은 “죽으면 죽었지 뜻을 꺾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적들이 석 선장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선장과 선원들을 격리했을 때에도 화장실에서 몰래 가져온 펜과 종이로 선원들에게 지시사항을 전했다. 마지막까지 선장으로서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여명 작전 당시의 상황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새벽 3시쯤 해적들의 당직 교대 시간에 갑자기 배 안에 총성이 진동했다. 아라이가 선원들을 인간 방패로 쓰기 위해 ‘캡틴, 캡틴’ 하면서 나를 찾았다. 기분이 이상해서 대답을 안 했는데, 이내 총을 맞고 의식을 잃었다. 다시 일어나서는 해군에게 고통이 너무 심하니 모르핀을 놓아 달라고 하면서 끝까지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신대식(35) 남해해양경찰청 특공대원은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석 선장의 행동이 큰 교훈이 됐다. 저희도 현장에서 위험한 상황에 자주 부딪히는데 불굴의 정신력으로 우리 해역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석 선장은 “피랍과 치료 과정이 힘들었지만 살아남겠다는 정신력이 나를 살린 것 같다. 온 국민의 성원이 저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여생을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부산=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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