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 축복될까 재앙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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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중 수교 이제 20년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사춘기를 지나 청년기로 접어드는 나이다. 중국의 존재는 분명 우리 경제에 ‘축복’이었다. 수교와 함께 많은 임가공 업체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고, 우리는 큰 충격 없이 정보기술(IT) 강국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순탄한 산업 구조조정 뒤에 중국이 있었던 것이다. ‘세계공장’은 우리에게 수출 시장을 제공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극복의 동력을 중국에서 찾기도 했다.

 핵심은 기술이다. 기술이 있으니 중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손을 내밀었고, 투자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고기술 부품을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하고, 이를 ‘세계공장’에서 조립해 제3국으로 다시 수출하는 흐름이었다. 환상적인 분업구조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對)중국 수출의 70% 안팎은 고부가 중간재(부품·반제품)가 차지한다.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최근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내놓은 ‘한-중 인재경쟁력 비교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비관적이다. 양적으로 볼 때 중국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쟁력이 높다. 한 해 쏟아지는 이공계 대학원 졸업생은 우리보다 약 9.1배, 각 기업과 연구소의 연구개발(R&D) 인력은 7.4배나 많다. ‘큰 나라니까…’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없다. 질(質)적으로도 중국에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학술지에 실린 과학기술 분야 논문 수를 보면 양국 실력 차가 금방 나온다. 중국은 정보통신 2위, 소프트웨어 4위, 환경·에너지 분야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각각 10, 17, 15위에 그쳤다. 중국의 인재 양성 정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지난 2008년 이후 ‘천인계획’을 가동하는 등 해외 우수 인력 사냥에 나섰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과학자 1000여 명을 ‘화인(華人)과학 영재’로 분류하고 관리하고 있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들 덕택에 중국 산업기술은 여러 분야에서 도약(leap-frog)하고 있다.

 과학 인재 경쟁력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우리가 알량하나마 우위를 유지할지 몰라도 가까운 장래에는 역전될 수 있다. 지난 20년 중국의 존재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면, 위험한 착각이다. 우리의 대처 여하에 따라 앞으로 20년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일부 중국 투자 기업의 무단철수는 아주 작은 재앙의 징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답을 안다. 정부·기업·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리서치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연구원 중심의 대학원을 육성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중국에 맞설 수 있는 분야의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실행뿐이다. 아무리 좌우, 여야로 나뉘어 싸우더라도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는 데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게 재앙을 막는 길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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