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의 ‘사과’는 자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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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호 31면

지난 9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소립자를 구성하는 중성미자(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르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해 논란을 낳았다. 과학계에선 아직 이를 반증하지도,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재입증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가설이 반복적 실험을 거쳐 만일 사실로 확인된다면 새로운 과학 혁명이 도래할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뉴턴의 역학법칙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확장하며 현대물리학의 세계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토머스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실험과 사례가 증가하면서 기존 정상과학은 위기를 맞게 되고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면 과학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CERN의 가설과 관련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부정할 정도로 실험적 데이터와 논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뉴트리노의 실험 결과에 대한 발표는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조건과 자유로운 정신에 의해 발전해 온 도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하나의 개체로 보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인간이 공간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현대문명의 토대를 구축해온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상력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정신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 발전의 핵심임을 역사는 말해준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저서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를 통해 ‘지구가 태양의 중심’이라는 중세의 우주관을 부정하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발표했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와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지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중세의 역사관과 신정주의적 세계관을 뿌리째 뒤흔들면서 중세 질서에 속박된 인간정신을 해방시켰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1687년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해됨으로써 근대과학 발전의 기점이 되었다.

자유주의 정신에 바탕한 근대과학의 발전은 18세기 서구 산업혁명을 촉발해 자본주의의 발달을 가져오고,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인권이 보장된 20세기 현대사회에 이르게 한다. 20세기 들어서도 과학 기술의 발전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 등 패러다임 전환을 거듭했다. 그 변화와 혁신의 속도가 너무 빨라 오히려 사람을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에 속박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로 상징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바꾼 혁신의 아이콘이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고 말한 잡스는 기존의 PC를 뛰어 넘는 애플II, 아이폰, 아이패드를 개발해 21세기 스마트 혁명을 이끌었다. 단순함과 편의성으로 이제 인간이 기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동기에 의한 앱의 생산·이용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작동한다. 이른바 스마트폰(아이폰) 혁명이다. 그 덕에 우리는 지구촌 차원에서 소통하며, 진화하는 집단지성을 통해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앎’이라고 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이브의 사과, 근대과학 혁명의 아이콘인 뉴턴의 사과, 그것과 함께 스티브 잡스의 사과는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혁신을 뜻한다. 잡스의 사과는 기술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벗어나게 했다는 측면에서, 과학 발전과 함께 인간 지성의 자유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 자유가 확장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자유’의 아이콘이다.



박영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위원. 서울대 졸업(83년)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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