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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 판치는 요지경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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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우리나라는 정말로 짝퉁이 판치는 나라다. 국제사회에서 짝퉁 하면 단연 중국이 손꼽히지만,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은 한국을 ‘짝퉁 잘 만드는 골치 아픈 나라’로 정한 지 오래다. 이들 회사는 한국 내에 법률가 그룹을 형성해 자신들의 상표권을 보호하느라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한다고 한다.

 진짜가 있으면 가짜도 있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풍속도다. 그런데 짝퉁 시장의 규모와 그 유통 과정 등을 알고 보면, 패러디 상품 정도로 웃어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짝퉁이란 모방된 제품이 아니라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다. 짝퉁이 판치는 세상은 위험하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짝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진품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짝퉁이라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미 진정성이 결여된 상태다.

 정치계, 경제계, 교육계, 문화계는 물론이고 종교계에도 그러한 짝퉁들이 설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진정성이 결여된 말들이 난무하는 선거판에서 보는 짝퉁 애국심과 짝퉁 도덕군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짝퉁이 판치는 요지경 세상, 물질과 정신이 함께 병든 세상이다. 물질은 유한한 것이지만 정신은 무한에 속한다. 물질을 다루는 사람의 정신은 물질의 가치를 천차만별로 가늠한다. 그 미세한 정서를 바탕으로 물질에 일련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니,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양지차가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정신은 그 천양지차를 흐릿하게 만들어 놓았다. 짝퉁에 마비된 세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물질의 짝퉁과 정신의 짝퉁이 함께 판치는 세상이 되고 보니, 지금이 바로 요지경 속이고 오탁악세가 아닌가? 오탁이란 세상이치를 보는 견해가 흐려지고, 시대의 흐름이 혼탁해지고, 생각이 어지럽고, 어리석은 사람이 행세를 하고, 생명의 가치가 상실되는 말세적 징후를 말한다. 짝퉁의 시대 그 자체가 오탁악세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물질이 아닌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란 의미다. 짝퉁이 판치는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짝퉁문화를 먼저 척결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이념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때다. 낱낱의 물건들에 부여되는 존재의 가치를 ‘짝퉁’이 아닌 진품의 시각에서 부여할 때 세상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