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의 재미있는 자연 이야기 ⑬ 멸종위기 코뿔소를 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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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100㎞ 떨어진 입스위치의 박물관에 지난 7월 28일 밤 두 명의 도둑이 침입했다. 도둑들은 다른 소장품은 그대로 두고 1907년부터 전시돼온 코뿔소 박제 뿔을 훔쳐갔다. 올 2월에는 영국 에식스의 경매소에도 도둑이 들어 경매를 앞둔 검은코뿔소의 머리를 훔쳐갔다. 최근 유럽의 박물관·골동품상점·경매장 등에서는 코뿔소 뿔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올 들어서만 30건이 넘게 발생하면서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아예 가짜 박제를 전시하고 있다.

도난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코뿔소 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아시아지역에서 뿔이 암·신경통 치료제로 소문이 나면서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밝혀진 적도 없는데 소득이 늘어난 중국·베트남 지역에서는 뿔 1㎏ 가격이 4만5000달러(약 5100만원)까지 뛰었다. 중국에서는 뿔을 이용하기 위해 아예 코뿔소를 사육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서는 밀렵도 성행한다. 남아공에서만 희생된 코뿔소가 2008년 83마리에서 2009년 122마리, 2010년 333마리로 급증했다. 올해도 10월까지 341마리나 희생됐다.

지난달에는 베트남 캣티엔 국립공원에 남아있던 마지막 야생 자바코뿔소가 밀렵에 희생되면서 인도네시아의 섬지역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지구상에는 모두 5종(種)의 코뿔소가 있는데, 자연보호단체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코뿔소(사진1)는 44마리, 수마트라코뿔소(사진2)는 275마리만 남은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흰코뿔소(사진3)는 2만150마리, 검은코뿔소(사진4)는 4860마리, 인도·네팔지역의 인도코뿔소(사진5)는 2850마리 정도 남았다.

세계야생보호기금(WWF)에서 매년 9월 22일을 ‘세계 코뿔소의 날’로 정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는 코뿔소를 구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보호단체 등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많이 제기된다. “코뿔소를 마취시킨 뒤 미리 뿔을 제거해버려 밀렵에 희생되는 비극을 막아주자” “코뿔소 뿔에 진드기 죽이는 살충제를 넣어 코뿔소에겐 유익하지만 사람은 아예 먹을 엄두를 못 내도록 하자” 등등. 하지만 모든 야생 코뿔소에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궁여지책이다.

아예 매년 정해진 숫자만큼 사냥을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코뿔소 뿔 시장을 키우게 돼 밀렵을 더욱 부추길 우려가 대두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밀렵 단속과 함께 중국·베트남 정부당국이 뿔 소비를 철저히 단속해 근원적인 수요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코뿔소의 날이 잊혀지도록 밀렵이 완전히 뿌리 뽑힐 날이 과연 올 것인가.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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