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벤처, 미 월가에 ‘방패’를 수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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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흠 잉카인터넷 대표

한 토종 중소기업의 보안 소프트웨어(SW)가 미국 대형 은행의 인터넷 뱅킹에 채택됐다. 주인공은 잉카인터넷의 온라인 금융거래 보안 솔루션인 ‘n Protect’. 이 은행과는 연 20억원에 3년 사용 계약을 맺었고 다른 금융기관들과도 협의 중이다. 현지 지사 설립 없이 2명의 직원이 미국을 방문해 이룬 성과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지원으로 미국 벤처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이 주효했다.

 잉카인터넷은 2000년 주영흠(35) 대표를 비롯한 20대 청년 넷이 세운 보안 SW회사. 대표 제품 ‘n Protect’는 국내 대부분의 정부 기관과 금융기관에서 사용한다. 현재는 직원 230명, 연 매출 139억원대 규모다. 지난해 초, 연방금융기관검사협의회(FFIEC)가 미국 금융기관들에 온라인 뱅킹 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2012년 1월까지 의무적으로 대책을 세우라고 공지했다는 보도를 접한 후 회사는 미국 시장에 주목했다. 조사해보니 해당하는 은행은 9500개, 한 곳당 1억원씩만 제품 사용 계약을 맺어도 1조원 규모 시장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미국 시장은 국내 SW업체들에 ‘최후의 목표’로 통한다.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 현지 법인부터 설립했다가 자금만 날린 업체도 적지 않다. 잉카는 미국 보안 특허를 갖고 있어 기술에는 자신 있었지만 마케팅은 다른 문제였다. 담당자 e-메일 주소조차 알 수 없어 100곳이 넘는 은행의 고객용 e-메일 주소로 “한 번만 미팅 기회를 달라”는 내용을 보냈지만 응답은 거의 없었다.

 NIPA의 중소기업 수출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난 것은 올 5월. NIPA가 미 새너제이 산하 벤처지원 기관인 USMAC(U.S. Market Access Center)와 제휴를 맺고 올해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잉카의 담당직원 2명은 7월과 9월 두 차례 미국을 방문해 USMAC으로부터 소개받은 멘토 안토니오 에스피노자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최고경영자(CEO) 출신 벤처투자자로, 그가 20여 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경험·정보·인맥은 잉카에 피와 살이 됐다.

 잉카 직원들은 현지 금융기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PT) 기회를 10여 차례 가졌다. 처음 4~5번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멘토는 문제를 정확히 짚어줬다. 첫 조언은 “명함부터 바꾸라”. ‘세일즈 코디네이터’ ‘비즈니스 컨설턴트’ 같은 직함의 명함을 내밀면 ‘이상한 사람이 왔구나’ 생각하고, ‘엔지니어’ ‘시스템 애널리스트’가 와야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얼굴을 익히는 미팅은 없다” “미국은 사장과 부사장도 기술자 출신”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일단은 얼굴을 익히고 차차 기술을 설명하면 되겠지’ ‘임원에겐 쉽게 설명하고 어려운 기술 얘기는 실무자에게 하면 되겠지’ 같은 한국적 생각을 고칠 수 있었다.

10여 차례 PT 연습을 거쳐 마침내 멘토에게서 “퍼펙트!”란 반응이 나왔다. 그 직후 노스캐롤라이나 소재의 미 대표 은행과 미팅을 잡았고 3년 계약을 성사시켰다. 미국 보안기업이 잡아내지 못하는 악성코드를 n Protect가 감지해 처리하는 것을 부사장 앞에서 시연한 것이 주효했다.

 이번 계약을 주도한 잉카인터넷 백용기 상무는 “국내 기술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수출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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