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20일 공쳤다” 이삿짐센터 한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8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이삿짐센터.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모습은 서민경제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선영 기자]

8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상가건물 1층에 있는 ○○이삿짐센터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남편과 함께 이 이삿짐센터를 운영해 온 조성연(54·가명)씨는 서울 은평구의 집 근처 식당에서 홀 서빙 일을 하고 있었다. 조씨는 “이사 건수가 한 달 10건으로 20일은 쉬다보니 가욋일을 해야 적자를 메울 수 있다”며 “시간 날 때마다 식당 일을 돕고 5만~6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 문을 연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며 “헐값에 이삿짐을 옮기는 무허가업체와 마케팅을 앞세운 대형업체 사이에서 경쟁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한 달 이사 10건(건당 30만~50만원)을 해도 인부들에게 1인당 9만~10만원씩 주고, 가게 월세 50만원을 내고 나면 한 달 수입이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한때 2.5~5t 화물차 10여 대와 사다리차까지 갖고 있던 조씨는 현재 2.5t 화물차 한 대만 굴리고 있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정모(49)씨는 올 들어 장거리 이사 일을 하지 않는다. 정씨는 “장거리 이사에 관한 문의가 한 달에 5건 정도 오지만 대전 아래쪽으로는 일을 맡지 않는다”며 “기름값이 오른 데다 인부들에게 이틀 일당 빼주는 것도 부담돼 큰 업체를 찾으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익이 한 달에 250만~300만원가량”이라며 “가을이 이사 성수기라고 하지만 올 들어선 7~8월보다 경기가 못 하다”고 했다.

 이 같은 영세 이삿짐센터의 상황은 서민경제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치솟는 기름값에 부동산 경기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114’의 이호연 시장분석팀장은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이 지난해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거래량이 올 3월 반짝 증가했지만 경기가 장기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거래량이 다시 줄고 있다”고 했다.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삿짐센터 사업자의 경우 반드시 국토해양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실제 이삿짐시장에선 무허가업체들이 판치고 있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측은 “현재 서울 지역 허가업체 1000곳 중 70~80%가 화물차 1~3대를 보유한 영세업체”라며 “무허가업체가 허가업체의 절반이 넘는 500곳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일반 화물차 운송업자가 무허가로 이삿짐 계약 중개 등 이삿짐센터의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 같은 행위는 관련법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실제로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에서 밀리는 영세업자들은 2년 전 생기기 시작한 연예인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으로 가입하기도 한다. 명성통운 손경수(60) 사장은 “연예인 운영업체 등에 광고비 명목으로 매달 300만원씩 내고 하청을 받고 있다”며 “광고비 명목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아깝긴 하지만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정봉·하선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