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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50세 ‘내 나이가 어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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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에 사는 윤영옥(56)씨는 50대에 접어들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1~2년 사이 오빠와 친정아버지, 시아버지가 연이어 돌아가셨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힘든 가운데 50세에 폐경(閉經)이 겹쳤다. 집안일로 바쁠 땐 모르다가 여유를 찾으면서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윤씨는 52세에 어깨 회전근 파열로 양쪽을 수술했다. 이듬해엔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혀 협심증이 나타났다. 2009년엔 디스크 탈출증으로 허리수술을 받았다. 그 사이 체중이 7㎏나 늘고 고지혈증과 불면증이 생겼다. 윤씨는 “갑자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모두 원망스러웠다” 고 말했다. 뒤돌아보니 갱년기 우울증이었다.

그런 윤씨를 일으켜 세운 건 두 딸과 남편이었다. 윤씨가 울적해할 때마다 외식을 하고 뮤지컬과 영화를 보러 갔다.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윤씨는 지난해부터 운동을 시작해 활기찬 삶을 되찾았다. 일주일에 5번 매일 1시간씩 신나는 음악에 맞춰 운동한다. 그 결과, 체중이 줄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 협심증 치료약의 용량도 줄이게 됐다. 50세 생애 전환기를 혹독하게 치렀던 윤씨는 “손자를 안아줄 만큼 허리 힘을 길렀다”며 “이젠 몸의 변화가 즐겁다”고 말했다.

폐경 후 힘든 시간을 보냈던 윤영옥(56?가운데)씨가 운동으로 활력을 되찾았다. 원영애(53?왼쪽)씨와 김숙자(52)씨는 “젊을 때 보다 건강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50세는 여자 삶에 삼중고 겹치는 전환기
여자에게 50세 전후는 사추기(思秋期)다. 사춘기처럼 신체·정신·환경적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신호철 교수는 “여자나이 50세는 삼중고가 겹치는 생애 전환기”라고 말했다.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폐경이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 49.7세에 폐경한다. 여성호르몬이 줄면서 각종 갱년기 증상이 이어진다. 별안간 더워져 땀이 줄줄 흐르는 열성홍조가 가장 흔하다. 밤에도 열이 나 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지난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를 성별·연령대별로 비교해보니, 50대 여성이 3만6000명으로 가장 많았다(국민건강보험공단).

50세부턴 주름살이 부쩍 늘고 질도 건조해진다. 성관계를 할 때 통증이 커 부부관계가 뜸해진다. 신경이 예민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낸다. 기억력과 집중력도 떨어진다.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 하기 쉽다. 우울증 환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많다. 여성환자 중에서도 50대가 5명 중 1명꼴로 가장 많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몸과 마음의 변화로 괴로운데 가정에서의 역할마저 흔들린다. 신 교수는 “모든 관심을 집중해 키운 아이들이 취업과 결혼으로 떠나고 남편은 한창 사회적 책임이 클 때라 멀어진다”며 “이 시기 삶의 가치를 잃고 허전함을 느끼는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도 50세 전후에 최고조에 이른다. 건보공단이 2008년 스트레스로 진료받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5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

골다공증·심혈관질환 등 질병 발생 도미노

여자는 나이 50세를 기점으로 질병발생이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박형무 교수(대한폐경학회장)은 “50세 전후 폐경 초기엔 여성의 75%가 열성홍조와 야간발한을 경험한다”면서 “50대 중반엔 기분변화·기억력감퇴·성기능장애 등을 겪다가 후반엔 골다공증과 심혈관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골다공증은 50대부터 급격히 진행된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정경아 교수는 “폐경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결핍되면 뼈가 약해진다”며 “폐경 후 15년간 뼈 조직의 75%가 소실돼 뼈가 변형되거나 잘 부러진다”고 설명했다.

폐경 후 여성의 심혈관질환 발생률은 폐경하지 않은 동년배보다 3배나 높다. 여성 심혈관질환자 수는 50대부터 증가해 60대부턴 남성을 앞지른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내과 양주영 교수는 “여성호르몬이 분비될 땐 혈관 보호효과가 있는데, 폐경으로 분비가 감소하면 위험인자에 노출돼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더 안전한 여성호르몬 치료법 등장

폐경 전후 여성의 85%는 갱년기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대한폐경학회). 결핍된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면 되지만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꺼리는 여성이 많다. 2002년 발표된 여성호르몬제에 대한 대규모 임상시험(WHI)에서 유방암 위험성을 제기해서다.

갱년기 증상을 겪고 있는 원영애(52)씨. 3년 전에 여성호르몬제를 처방 받았지만 보름치만 먹고 끊었다. 주변에서 유방암 이야기를 들었다. 원씨는 “지금도 어깨에 화롯불을 놓은 것처럼 열이 훅하고 올랐다가 내려가 늘 부채를 갖고 다닌다”고 말했다.

WHI 발표 이후 9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연구를 지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폐경 전후가 아닌 고령 여성을 대상으로 했고,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유방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간과하고 연구결과를 자극적으로 뽑아 성급히 발표했다는 의견이다.

연구결과에 대한 재분석이 나오면서 2007년부터는 사용량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저용량·천연 호르몬제나 골다공증 치료제(티볼론) 등 보다 안전한 치료법이 등장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김탁 교수는 “여성호르몬제는 사실 굉장히 안전한 약”이라며 “결핍된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면 폐경 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를 늦게 시작하면 좋은 약도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은 83세. 50세 전후 건강관리에 ‘제3기 인생’ 30년이 달렸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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