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꼬시는 데 빠져 ‘꽃중기’ 망가졌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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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로맨틱 코미디 ‘티끌 모아 로맨스’로 주연 신고식을 치르는 배우 송중기. 한예슬과 연상녀·연하남 커플로 등장한다. [강정현 기자]

‘꽃중기’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흠잡을 데 없는 외모에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생이라는 데서 오는 착실한 이미지. 그래서 그는 흔히 ‘엄친아’ ‘모범생’으로 불린다. 지난해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으로 여성 팬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했던 배우 송중기(26). 10일 개봉하는 영화 ‘티끌 모아 로맨스’로 충무로 주연 신고식을 치른다. 청년백수지만 천하태평, 여자 꼬시는 데만 온 신경이 집중된 지웅 역이다. 옆집 사는 천하 제일 짠순이 홍실을 연기한 한예슬과 한 푼 두 푼 통장에 저축하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여간 유쾌하지가 않다.

 백수 주제에 ‘멋진 오피스텔과 자동차, 여행’을 꿈꾸는 지웅은 로맨틱 코미디 남자주인공의 ‘정석(正石)’에서 한참 비껴나 있다. 시쳇말로 찌질하다 못해 측은한 녀석이다. ‘꽃중기’가 맡을 역할은 분명 아니다. 홍실이네 화장실 열쇠구멍을 철사로 쑤시며 “급하다”고 끙끙대거나, 콘돔 사러 간 편의점에서 50원이 모자라 계산대에서 능청 떠는 장면은 ‘엄친아’ 이미지를 정면으로 배반한다. “‘엽기적인 그녀’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늘 하고 싶었어요. 저를 좀 풀어주고 싶었거든요. 폼 잡고 멋있는 척 하는 거 말고, 덜 예쁘게 나오더라도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졌으면 했어요.”

 예쁘게 안 나오는데 속 타지 않을 배우는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긴 했는데, 막상 머리 부스스해서 안 멋지게 나오니까 촬영 초반엔 신경이 좀 쓰였어요.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장면 많아요. (웃음) 여배우들만 화면에 예쁘게 나왔으면 하는 거 아니거든요. 하지만 크게 봤을 땐 리얼리티가 있고 삶의 진정성이 배어 있다면 그게 예쁜 거겠죠. 드라마 ‘산부인과’(2010) 레지던트 역 할 때 여의사 팬한테서 ‘추레한 모습을 보니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는 같아 좋다’는 e-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내가 망가지는 이유를 알아주는 분들이 있구나, 그때 깨달았죠.”

 최근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선 얼굴에 침도 뒤집어썼다. 젊은 시절 이도(세종) 역인 송중기와 임금 세종 역인 한석규가 상상 속에서 만나는 화제의 장면이었다. “대본에 없는 걸 한 선배님 제안으로 만들었어요. 저한테 침 뱉는 연기도 선배님의 애드리브(즉흥연기)였고요. 찍기 직전에 저한테 귓속말로 ‘침뱉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하더군요. 제 얼굴에 온통 침이 묻었는데, ‘어떻게 저런 디테일을 미리 만들어낼 수 있나’ 하는 감탄밖에 들지 않았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매니지먼트가 만들어준 온실 속 화초 같을 거다 싶던 선입견이 서서히 허물어진다. 무엇보다 의사결정이 똑 부러진다. 반듯한 청년보다 똑똑한 청년 쪽에 가깝다고 할까. “작품으로 돈 벌 생각 하면 안 된다. 돈은 광고로 버는 거다”라는 주장은 순제작비 13억원인 저예산영화 ‘티끌 모아 로맨스’ 출연과 맞아떨어진다. ‘뿌리깊은 나무’ 출연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제 나이에 아역이죠, 4회까지만 출연하죠,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젊은 이도는 오히려 이방원보다 한 수 위인 인물이죠. 이걸 잘 해내면 연기자로서 제가 얻는 게 아주 많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결과는 대만족. “지금껏 같이 출연한 어느 여배우보다 더 떨리고 설렜던” 한석규라는 대선배를 ‘체험’한 것도 포함해서다. 잘생겼는데 영특하기까지 하다니. 송중기, ‘엄마 친구 아들’ 맞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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