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婚 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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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婚)이란 글자는 여자(女)와 어두울 때(昏)로 이뤄져 있다. 처음엔 저녁 무렵의 신부의 집이란 뜻이었다가 나중에 ‘혼인(婚姻)’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인(姻)은 여자(女)가 의지하는(因) 집으로, 신랑이 사는 집을 말한다. 혼(婚)이란 글자가 시사하듯 혼례는 해가 저문 뒤 신부의 집에서 신랑을 맞아 치러졌다. 신부가 음(陰)에 속하므로 혼례를 저녁 때 치른다는 해석도 있다.

주(周)나라 예의범절을 기록한 의례(儀禮)에 따르면 결혼 절차는 크게 여섯 단계다. 먼저 남자 집안에서 중매쟁이를 통해 여자 측에 청혼의 뜻을 전달하는데 이를 납채(納采)라 했다. 이때 중매쟁이는 기러기를 가지고 간다. 기러기가 ‘음지와 양지를 오가는 철새’이기에 남녀를 이어주는 상징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신부가 될 사람의 어머니 이름을 묻는 문명(問名·신부의 어머니 이름 대신 신부의 생년월일을 물어 궁합을 점치기도 한다), 가족회의를 거쳐 혼담을 확정 짓고 이를 여자 측에 전달하는 납길(納吉), 신부 측에 예물을 보내는 납징(納徵)으로 이어진다. 재미있는 건 예물에 사슴가죽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신화에 바탕을 둔다.

중국에서 최초의 부부는 복희(伏羲)와 여와(女瓦)인데 이들은 남매 사이로 배와 가슴을 접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슴가죽에 구멍을 낸 뒤 이를 사이에 두고 관계를 가져 후손을 둘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엔 결혼 날짜를 정해 전달하는 청기(請期),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 신부를 맞아 오는 친영(親迎) 등으로 결혼 절차가 끝난다. 결혼 후 1주년은 지혼(紙婚), 15주년은 동혼(銅婚), 25주년은 은혼(銀婚), 50주년은 금혼(金婚), 60주년은 회혼(回婚)으로 불린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신문방송편집간부 세미나에 참석했다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지난 3월 일본 동북부 지역의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인의 혼인이 갑작스레 늘고 있다고 한다. 80명 정도 근무하는 일본신문협회에서만 4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엄청난 재해를 겪으며 서로 의지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진 탓이란다. 사람뿐 아니라 일본이란 나라 또한 의지하고픈 대상이 절실할 것이다. 우리가 어깨를 빌려주면 어떨까.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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