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검·경 수사권 논란

경찰의 검사 비리 수사에 지휘권 배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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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탁종연
한남대 교수 경찰행정학과

검찰과 경찰이 검사의 수사 지휘 범위를 둘러싸고 또 갈등을 빚고 있다. 내년 1월 1일 발효를 앞둔 개정 형사소송법에 명기된 ‘대통령령’을 놓고서다. 개정 형소법 제196조 제3항은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했다. 최근 검찰과 법무부는 검찰의 지휘 없이 할 수 있는 경찰의 내사 범위를 좁히고,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초안을 제출했다. 경찰은 내사 범위 축소에 반발하며 검사의 부당한 지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의 초안으로 맞서고 있다. 현재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대통령령 제정 작업이 한창이다.

형사사법 개혁은 왜 원래 의도를 이루지 못하고 변질될까. 미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로드만은 『의식과 편의』라는 책에서 20세기 초 보호관찰·가석방 등의 개혁안 진행 과정을 조망하면서 형사사법 개혁 취지는 검사와 판사의 조직이기주의에 의해 왜곡·변형돼 왔다고 진단했다. 검찰이나 법원 같은 기관들은 조직의 권한과 영역 확대를 추구하기 때문에 개혁의 취지가 어찌 됐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목표를 전이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권 비대로 인한 전관예우나 ‘스폰서 검사’ 같은 비리, 더 나아가 거대 권력화 현상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검찰 개혁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100년 전 미국에서 벌어졌던 조직이기주의에 의한 개혁 좌초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검찰은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추진한 두 개의 큰 개혁안을 모두 형해화하고 있다.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 거의 유일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대통령령에 담을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는 시점에 있어 검찰은 검찰권 축소를 통한 형사사법의 정상화라는 목표를 무시하고 거꾸로 검찰권을 확장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검찰의 대통령령 초안을 보면 그런 의도가 분명하다. 지금까지 내사로 인정해 수사 지휘 대상으로 삼지 않던 입건 전 참고인 조사마저 수사의 개념에 포함시키고 지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경찰에서 일단 입건이 되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고 ‘전과’가 생긴다는 점에서 검찰의 발상은 반인권적일 뿐 아니라 위헌적으로 보인다. 나아가 검찰은 경찰의 독립성이나 내부 지휘구조는 무시하고 부속기관화하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조직의 수장인 경찰청장과 지방경찰청장은 경찰 수사에 관여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검찰은 필요시마다 경찰관 파견을 요구하고, 경찰관 교육까지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반면 경찰의 주장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핵심적 요구 중 하나는 검찰 지휘는 투명하게 불법 소지가 없는 방식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지휘는 전화나 구두로 부당하거나 불법한 지시를 하는 일이 흔했다. 문서에 남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면으로 지휘하고, 부당한 지휘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일 수 없다.

 전·현직 검사나 검찰 직원의 범죄에서 지휘권을 배제해야 한다는 제안도 법 정신에 비춰 당연하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검찰 지휘권이 배제되지 않는다면 검찰 직원 모두가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불체포 특권을 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은 상식적인 검찰 개혁을 희망한다.

탁종연 한남대 교수 경찰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