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쓸모있는 기계 늘어도 쓸모없는 사람 안 늘게 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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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굿 워크
E. F. 슈마허 지음
박혜영 옮김, 느린걸음
265쪽, 1만5000원

‘좋은 노동’에 관한 경제철학서이자 문명비판서이다. 지은이는 시대의 명제가 되었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했던 강연을 묶은 것인데 노동의 의미, 좋은 노동이란 어떤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등을 설파했다.

 인간생활은 노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서지만 슈마허는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협력하기 위해서도 노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대 산업문명이 인간의 노동을 가장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만들며, 인간의 총체적 본성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하도록 해 인간의 삶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아울러 슈마허는 성장지상주의와 거대기업, 첨단 기술을 비판하는데 지역실정에 맞는 ‘중간기술’을 사라지게 하고 자원 고갈, 생태파괴를 초래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한다는 근거에서다.

 30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만 “쓸모 있는 기계가 늘어나면 쓸모없는 사람도 늘어난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만큼 기계는 인간이 되고 만다”고 갈파한 그의 지적은 상당한 울림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혁명 직후 대량생산을 가능케한 기계 파괴를 주장했던 ‘러다이트 운동’을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과 기술을 부정하는 데 우리의 노력을 쏟아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좋은 노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인간을 기능화하는 산업교육 대신 삶을 예술품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구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고, 기계나 시스템 또는 자본에 봉사하게 만드는 나쁜 노동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실업은 늘고 있는데 실업자들은 자동으로 고도의 자본집약적 일자리로 흡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고도(Godot)’를 기다릴 수 없으며 ‘고도’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조치만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두 발로 일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성사 가능성을 떠나 시대를 앞서간 이 현자의 말은, 막막할 정도로 높은 취업의 벽 앞에서 헤매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로로 읽힌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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