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이 편지 빨리 못 전하면 녹두장군 잡혀갈 텐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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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찰을 전하는 아이
한윤섭 글, 백대승 그림
푸른숲주니어
176쪽, 9800원

갑오년(1894) 동학 농민 운동이 벌어지던 조선 말 격변기. 열세 살 보부상 아이가 역사의 한 가운데 던져진다. 아버지를 따라 어느 노스님이 “한 사람을 구하고 한 나라를 구할 수도 있다”며 건넨 서찰을 비밀리에 전하려 가던 길. 아버지는 도방(보부상의 숙소)에서 객사하고 만다. 정신 없이 장례를 치른 소년의 손엔 돈 열두 냥과 서찰뿐이다. 어차피 갈 곳 없는 소년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서찰을 전하기로 한다.

 그러나 한문을 몰라 편지를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겉봉에 적힌 10자의 뜻을 알아내기 위해 소년은 글월 아는 사람을 이리저리 물색한다. 전체의 뜻을 물어보면 비밀을 들킬 수 있으니 두 글자, 세 글자씩 나눠 알아보는데, 글자를 가르쳐주는 사람마다 공짜론 알려주지 않으니 난감할 노릇이다. 소년은 천주학당 짓는 걸 도우며 먹고 자는 일을 해결하기도 하고, 장터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벌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밝힌 글자는 ‘오호피노리경천매녹두(嗚呼避老里敬天賣綠豆)’다. 풀이하자면 ‘오호라, 피노리의 경천이 녹두를 파네’가 된다. 소년은 이 수수께끼 같은 글월이 경천이라는 자가 녹두장군 전봉준을 밀고한다는 뜻임을 알아채곤 전봉준을 만나기 위해 뛰어다닌다. 관군과 일본군까지 가세해 동학군을 잡으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1894년 11월 8일 충남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1만여 명의 동학 농민군이 죽는다. 소년은 흰 옷 입은 시체가 첩첩이 쌓인 끔찍한 현장을 목격한다.

 작가는 이렇듯 당시 시대상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었다.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 국제 정세에 대한 설명이 책 말미에 붙어있다. 동화를 읽고 나니 복잡한 역사가 더 쉽게 와 닿는 듯하다. ‘푸른숲 역사 동화’ 시리즈 첫째 권이다. 초등 고학년.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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