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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액정 부르주아지, 2040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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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 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2040세대의 선거혁명과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다. 서울시 인구의 약 3분의 2에 육박하는 20대에서 40대의 투표가 박원순 시장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때문이다. 이들의 박 후보 지지율은 70%에 이른다.

 2040세대는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갖고 있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 같이 비제도권에서 대안의 인물을 찾는 제3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무당파, 제3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이들은 특정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러한 투표행태를 보이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현재 대한민국, 특히 서울은 하루 일과가 액정화면에서 시작해 액정화면으로 끝나는 액정사회다. 집에서 보는 TV는 물론이고 가입자가 2000만 명이 넘었다는, 항상 내 곁에 붙어 있는 스마트폰, 업무와 공부를 위한 컴퓨터, 지하철 안의 광고용 모니터, 고층건물 위의 대형 광고스크린,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모두 액정화면이다. 여기에 가장 잘 적응한 세대가 2040이다. 2040세대는 정보의 종류와 정보취득의 시간대를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같은 21세기형 액정화면을 선호한다. 반면 그 윗세대는 정보와 콘텐트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TV와 종이신문을 선호한다. 또한 2040세대는 액정화면 안으로 자신의 의견과 콘텐트를 능동적으로 퍼뜨리고, 다른 2040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재미있고 창의적인 콘텐트를 개발한다.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 속에서 다양성과 경쟁이 공존하니 재미와 창의성은 기본이다.

 둘째, 2040세대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융합형 생산수단을 비교적 값싸게 보유하고 있다. 즉 생산수단이 처음에는 생산 업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것이 진화해 같은 생산수단으로 이제 소비도 하고, 놀이도 하고, 소통도 하고, 또 정치참여도 하는 융합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로 상품을 생산해 내지만, 인터넷으로 상품을 유통·소비하며,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놀기도 하고, 또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소통도 하며, 댓글과 항의문으로 정치참여도 한다. 이러한 융합형 생산수단은 기본적으로 지식경제시대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수단이다. 따라서 2040세대는 값싸게 생산수단을 보유하는 21세기형 부르주아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신 부르주아지가 21세기 자본주의에 맞는 능력과 스펙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이고 불공정한 기득권 세력에 의해 자기실현의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들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식정보 사회에서 자기실현의 길이 불공정하게 막혀 있는 21세기형 부르주아지인 것이다. 종북(從北)세력이 절대로 될 수 없는 이유다. 색깔론이 역효과가 나는 이유다.

 셋째, 액정사회의 도래와 융합형 생산수단의 보편화는 2040세대의 문화와 가치관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무기를 만들어 주었다. 정보취득의 양방향성과 이들이 갖고 있는 재미있고 창조적인 문화는 권위주의와 훈계의 문화를 거부한다. 그리고 윗세대가 항상 옳고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액정 안의 콘텐트를 장악할 기술과 지식과 창의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액정사회의 정치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해 대변하고 제도권으로 끌고 들어올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 정당이 이들에게 다가가려면 소통의 방식만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콘텐트인 것이다.

이 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싱크탱크 미래지’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