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동력 잃은 한나라, 장외에 발목 잡힌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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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열린 한나라당?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와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왼쪽 사진), 손학규 민주당 대표(왼쪽)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연합뉴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10월 국회’ 통과가 어렵게 됐다. 당초 한나라당은 28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비준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본회의 통과는 고사하고 비준안은 이날 해당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관문도 넘지 못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눈치를 보고 있고, 민주당은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장외의 ‘트위터’ 여론과 진보 시민단체에 끌려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정치가 갈수록 무력해지는 상황”(서울대 강원택 교수·정치학)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총선을 통해서 (한·미 FTA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묻고 19대 국회에서 FTA 문제를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비준안 처리의 전제 조건으로 미국 정부와의 재재협상을 통한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폐기를 내세웠다.

 ISD는 상대국에 투자한 기업이 손해를 봤을 때 투자유치국의 국내 법원이 아닌 제3의 중재기구에서 분쟁을 해결토록 하는 제도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들 가운데 파나마 등 후진국에는 ISD 조항이 있지만 이스라엘과 호주는 없다”며 “세계 10대 통상국인 우리나라도 호주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야권 대통합의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장 보선 때 박원순 선거대책위원회 멘토단으로 활동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우 김여진씨 등은 트위터에 FTA 반대 의견을 올리고 있다. 특히 김씨는 “한·미 FTA 졸속, 강행처리 반대합니다. 시도하거나 방관하는 국회의원 반대합니다”라고 적었다. FTA를 찬성하면 트위터 낙선운동까지 벌일 기세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반대를 ‘정략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기현 대변인은 “한·미 FTA는 야권연대라는 민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제물로 삼을 수 없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문제”라며 “민주당이 폐지를 요구하는 ISD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체결했던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손 대표는 이날 야 5당 대표 회담에서 “한·미 FTA 비준안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해 여야 간 타협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민주당이 끝까지 몸으로 막는다면 정치 생명을 걸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서울시장 보선 패배로 의원들이 위축돼 있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반발을 살 수 있는 강행 처리에 몸을 사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FTA 처리는 18대 국회에선 물 건너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육성 광고에 민주당 반발= 기획재정부와 FTA 국내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박재완·박진근)가 만들어 27일부터 방송된 40초짜리 분량의 광고가 “국민 여러분,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놓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으로 시작돼 야권이 반발했다. 광고엔 “FTA를 하는 나라들은 잘살고 하지 않는 나라들은 못 산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2006년 8월 당시 발언 등도 인용됐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28일 “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들이 지금에 와서 돌아가신 분까지 내세워 홍보를 하고 있으니 염치없는 행태가 참으로 가증스러울 뿐”이라고 반발했다. 노무현재단(이사장 문재인)도 “ FTA 광고를 계속 방영할 경우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란 성명을 냈다.

글=김정하·강기헌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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