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한국어 입’… MB 방미 때 통역 단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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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식당 ‘우래옥’에서 비공식 만찬을 갖고 있다. 오바마 오른편에 앉은 이연향 통역사는 이 대통령이 미국 고위급 인사와 만날 때마다 통역을 맡았다. 왼쪽부터 오바마 미 대통령, 이 통역사,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김일범 행정관(한국측 통역), 이 대통령. [워싱턴=안성식 기자]

“사흘을 홍삼 약발로 버틴 것 같다(웃음). 국빈 만찬 덕분에 처음으로 정장이 아닌 드레스를 입고 통역도 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 지난 12~14일 오바마 대통령과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한 통역사 이연향(54·왼쪽 사진)씨는 ‘시원 섭섭한’ 표정이었다. 그의 정식 직함은 미국 국무부 산하 통번역국 일반어과(비유럽어)의 총괄 책임자(General Branch Chief, Interpreting Division).

 이씨는 자신의 통역 생활 중 이번 국빈 방문과 2008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14일 디트로이트를 방문했을 때 얘기를 했다.

 “이 대통령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프로야구팀)의 모자를 쓰고 연설한 것은 두고두고 이슈가 될 정도로 큰 인기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카고 출신이라서 모자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주저없이 디트로이트 모자를 쓰는 걸 보고 ‘타고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씨의 원래 전공은 통역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예고와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됐을 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친구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 대학원 입학 시험장에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얼떨결에 시험을 쳤는데 덜컥 합격했다. 중학교 때 무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란에서 3년 동안 국제학교를 다녔고, 대학교 영자신문사에서 활동해 영어에 기본은 있었어도 통역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에 걸프전이 터져서 통역사로 나섰고, 이름을 알릴 즈음 미 캘리포니아주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에 초청받아 한영과에서 강의를 했다. 10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틈틈이 통역을 해오던 그는 2009년 국무부로 둥지를 옮겨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의 통역을 담당했다.

 그는 외교 통역의 매력에 대해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있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비공개 회담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 현장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국가 원수와 저만 아는 비밀이다. 그만큼 입이 무거워야 하는 게 이 세계의 직업윤리다.”

 그는 다음달 하와이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 통역을 끝으로 당분간 미 국무부를 떠날 생각이라고 했다. 이화여대에서 후배 통역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가 말하는 외교 통역의 비결은 ‘언어’가 아니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다른 국가를 방문할 때는 항상 며칠 먼저 그 나라에 간다. 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면 통역할 때 도움이 된다.”

워싱턴중앙일보=이성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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