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가장 싼 주유소 거리, 연희로 1.5㎞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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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희동의 기름값은 서울 평균 가격보다 저렴하다. 연세주유소의 경우 휘발유를 1947원에 팔고 있다. [김태성 기자]

서울 연희동의 기름값이 수상하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동네임에도 27일 기준으로 서울의 보통 휘발유 평균가격(2064.66원)보다 L당 100원 이상 싼 주유소들이 ‘연희로’를 따라 모여 있다. 서울 최저가 주유소도 여기에 있다. 광호·연희주유소(SK에너지)로, 보통 휘발유 가격이 L당 1936원이다. 서울 평균가격보다 128.66원, 전국 평균보다 56.44원 싸다.

 “인근 연세주유소가 1년 가까이 서울 최저가로 기름을 팔아 우리도 이달 초부터 가격을 대폭 낮췄다.”

 26일 만난 광호주유소 관계자의 말이다. 광호주유소는 지난달만 해도 L당 2099원에 기름을 팔고 있었다. 연세주유소의 영향으로 무려 150원 넘게 기름값을 낮춘 것이다. 이 주유소는 현재 기름 공급가를 낮추기 위해 SK 본사와 협의하고 있다. “공급가를 안 낮춰 주면 30년 된 주유소 브랜드(폴)를 바꿀 생각마저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상황은 다급했다. 이곳뿐 아니라 연희로를 따라 모여 있는 주유소의 기름값이 대체로 L당 2000원을 넘지 않았다.

 이 일대 주유소의 기름값을 낮추게 한 연세주유소(GS칼텍스)는 서대문소방서 뒤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광호주유소와는 500m 떨어져 있다. 자동차가 5대 들어가면 꽉 차는 주유소(496㎡)에는 기름 넣는 차로 북적였다.

 “여기는 원래 기름이 안 팔리던 자리예요. 지금도 고객의 반 정도가 마포·세검정 등에서 일부러 찾아옵니다.”

 송시의(46) 사장의 말처럼 연세주유소는 대로변도 아닌,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주유소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하루 평균 1000대 이상의 차가 방문 한다. 업계에서는 월 1000드럼을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는데 연세주요소는 늘 그 이상을 판다.

 송 사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발상의 전환’을 꼽았다. 그는 “마진을 좀 더 붙여 적게 파느냐, 마진을 줄여 많이 파느냐는 사이에서 눈 딱 감고 가격을 내렸고, 그러자 고객이 불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리다매 전략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휴지·물 같은 경품을 없앴다. 작은 주유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유를 팔지 않고 오로지 휘발유·경유만 팔기로 했다. 등유 탱크를 휘발유·경유 탱크로 전환해 저장 능력을 키웠다. ‘서울에서 가장 싸다’는 입소문에 손님이 몰리자 정유사의 대접도 달라졌다. 1등급 주유소가 돼 기름을 좀 더 싼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었다.

 송 사장은 “기름값 가지고 절대 장난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남들보다 기름값을 먼저 내리고, 오를 때는 천천히 올렸다. 그렇게 할수록 연세주유소의 기름값에 대한 신뢰가 쌓여 갔다. 송 사장은 “처음에 값을 올리면 왜 올렸느냐고 묻던 사람들이 ‘이 집이 가격을 올렸으면 다른 데는 더 많이 올랐을 거다’고 믿어 준다”며 뿌듯해했다.

 송 사장네 주유소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는다. 직원 10명 모두 정규사원이다. 퇴직금에 보너스도 지급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집밥’을 먹여 주고 싶어 송 사장의 장모가 매 끼니를 책임지고 있다. 송 사장은 “우리 주유소는 작아도 차가 몰리다 보니 다른 곳보다 일하기 힘들다. 돈은 많이 못 주더라도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전 장사하면서 이익금이 얼만지 매일 계산하지 않아요. 만약 기름값이 요동쳐서 팔수록 밑지는 날에 그걸 계산하고 있으면 잠이 오겠어요. 크게 못 벌어도 그래도 먹고는 살아요.” 송 사장이 말하던 중 사무실에 들어온 직원이 “과일 트럭이 와서 샀다”며 슬며시 사과 5개를 놓고 가자 그는 “그냥 이런 재미”라며 활짝 웃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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