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한-중 통화스와프 이뤄지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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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한때 화제가 됐던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의 TV 광고다. 지난 9월 하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와 주요 20개국(G20)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 출장을 다녀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속마음도 이랬을 것이다.

 당시 재정부는 “박 장관이 다자간 국제무대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고 했지만 과연 무엇이 ‘성공’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일, 한·중 재무장관 회동에서 각각 양자 간 통화스와프에 공감대가 있었다”며 “그러나 통화스와프는 상대방이 있는 문제여서 체결할 때까지 공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 장관은 지난달 22일 미국·중국·일본·프랑스·호주 등 5개국 재무장관과 잇따라 양자 면담을 했다. 특히 미국·중국·일본과의 양자 면담을 마치고는 예정에 없던 공동합의문까지 만들었다. 재정부 당국자는 “재무장관 간 면담에서 공동합의문까지 내놓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셰쉬런 중국 재정부장과의 합의문은 “양자, 지역, 글로벌 차원의 상호 관심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금융시장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긴밀한 공조를 지속해 나가자”는 내용이었다. 합의문의 ‘금융시장 안정’이란 표현에 한·중 통화스와프 추진을 뭉뚱그려 담은 것이다. 아즈미 준 일본 재무상과의 면담 합의문에선 “한·일 재무당국 간 다양한 레벨에서 구축된 핫라인 등을 통해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표현했다. 정부는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조심스럽게 통화스와프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9월의 워싱턴 양자 회동은 한·중과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체결 시기와 관련, 외환 당국은 고심을 거듭했다. 출렁대던 금융시장이 10월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은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고, 그 후 한·일, 한·중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특히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외환시장은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정부는 그때와 같은 ‘극적 효과’를 위해 통화스와프 체결 시점을 뒤로 미루는 방안도 한때 검토했지만 ‘가능할 때 하자’는 쪽으로 정리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모멘텀이 있을 때 체결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19일 방한 시점에 맞춰 협상 타결을 원했다. 결국 발표 시기는 일본이, 규모(700억 달러)와 조건(달러 스와프 포함)은 한국이 주도해 결정했다. 한·중 통화스와프 확대도 26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상무부총리의 방한 시점에 맞춰졌다. 중국과 일본의 미묘한 라이벌 관계도 고려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관계를 감안할 때 한국이 어느 한쪽하고만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워싱턴 릴레이 회동 이후 한·일과 한·중 통화스와프가 속도를 내자 박 장관의 발언에도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미국 출장 직후인 지난달 28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파장에 대비해 ‘3차 방어선’까지 든든하게 마련했고 최정예부대가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에게는 “근거 없이 불안해할 필요는 없으며 정부를 믿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매진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렇다면 한·중과 한·일 통화스와프는 한국의 ‘외환방패’로서 충분한가. 신제윤 재정부 1차관은 “이번 위기는 2008년처럼 쓰나미같이 갑자기 밀려오는 게 아니라 천천히 다가오는 위기”라며 “이에 대비해 아시아 지역부터 선제적으로 벽돌을 쌓아놓자는 취지”라고 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만큼 효과가 강력하지는 않다는 점은 정부도 인정한다. 박재완 장관은 지난달 22일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의 면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G20과 양자채널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지만 실제 통화스와프 체결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관심이 온통 유럽 쪽에 쏠려 있어 아직 신흥국과의 통화스와프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서경호 기자

박재완 장관의 통화스와프 관련 말말말

9월 22일 셰쉬런 중국 재정부장과의 양자회동 결과 발표문

“금융시장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긴밀한 공조를 지속해 나가겠다.”

9월 22일 아즈미 준 일본 재무상과의 양자회동 결과 발표문

“최근 과도한 환율 변동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우려를 표명한다. 세계 경제 및 아시아 경제에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한·일 재무 당국 간 다양한 레벨에서 구축된 핫라인 등을 통해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 나가겠다.”

9월 28일 경제정책조정회의

“정부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파장에 대비해 ‘3차 방어선’까지 든든하게 마련했고 최정예부대가 지키고 있다. 따라서 (국민 여러분은) 근거 없이 불안해할 필요는 없으며 정부를 믿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매진해 주시기 바란다.”

10월 4일 대외경제장관회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빗대) 유로존 위기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근본적이고 확고하며 안전한 해결책(Essentially Firm & Safe Framework)’이 마련돼야 한다.”

10월 5일 위기관리대책회의

“진짜 약을 먹고도 환자가 믿지 못해 차도가 없는 노세보 효과(Nocebo effect)의 부정적 바이러스를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불안감이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부작용이 있다고 판단된다. 믿음만 있다면 약이 아니라도 병이 치료되는 플라세보 효과의 긍정적인 바이러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10월 19일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

10월 26일 한·중 통화스와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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