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개 부족 갈등 … 서방 이권 경쟁 … 튀니지·이집트보다 민주화 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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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교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살해당하면서 정권이 완전히 붕괴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또 다른 중동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리비아 사례는 배경·진행과정·결과 등에서 튀니지·이집트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중동 민주화 물결의 새로운 흐름이다. 따라서 리비아의 미래도 튀니지와 이집트보다 더욱 험난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시민혁명 vs 내전

튀니지와 이집트의 사례는 시민혁명의 성격을 띤다. 독재에 맞서 국민이 들고 일어나 결집력도 강했다. 이 때문에 보름 전후라는 짧은 기간 내에 대통령을 축출할 수 있었다. 권력 이양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리비아 사태는 내전이었다. 정권에 대항한 시민군 세력의 승리다. 국제사회의 물심 양면의 지원을 받은 동부 벵가지 중심 반정부 무장세력이 일궈낸 통치세력 축출이다. 평화적인 시위가 아니라 무력이 동원된 투쟁의 성공이다.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물적인 피해도 컸다. 아울러 새로운 통치 집단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외부 서방세력의 군사적 지원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슬람주의 vs 부족주의

혁명에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서구식 세속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과 이슬람 전통에 입각한 국가 건설을 주창하는 세력 간의 대립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리비아의 경우는 부족주의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을 받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확보했지만 리비아 내부의 통합을 일궈낼지는 확신할 수 없다. 140여 개 부족 간 화합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도국가위원회는(NTC)는 이미 부족과 정파 간의 이해관계로 분열하는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부의 위협 vs 외부의 개입

리비아는 내부 문제와 더불어 서방 개입이라는 큰 변수가 있다. 수십억 달러의 전비를 투입한 미국·영국·프랑스는 이미 리비아 재건사업에서 상당한 보상을 받으려 하고 있다.

9월 15일에는 군사작전을 주도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주축 국가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방문했다. 포스트 카다피 시대에서 발언권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리비아의 자원과 재건사업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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