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사기술 한국서 상업용으로 환생

중앙일보

입력

“섭씨 3천도에서 견디는 가스터빈,종일 엔진을 켜놔도 열을 받지 않는 휴대폰 이동중계차, 김이 안 서리는 스키용 고글….”

러시아의 첨단 군수·우주항공기술들이 국내에 들어와 속속 민생기술로 탈바꿈하고 있다.공장 등 산업현장에서 뿐 아니라 일상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그 기술의 응용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에 과학기술 교류가 활발해진 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러시아 과학자만 1백여명에 이른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첨단 기술이 국내에서 민수화 한 것은 수십 종류에 이른다. 주요 기술의 개발 당시 용도와 국내에서 쓰이고 있는 현황을 알아 본다.

◇ 냉.난방 자유 조절되는 금속판〓열전재료라는 신물질이다. 금속판에 전기를 연결하면 열을 만들거나 식히는 덩치가 큰 제너레이터가 없어도 냉.난방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김치 냉장고를 비롯해 일부 첨단 정수기에서 찬물.뜨거운 물 만드는 곳에 이 신물질이 쓰이고 있다.

하루 종일 엔진을 켜놔야 하는 휴대폰 이동중계차의 경우 차 바닥에 이 금속판을 깔아 놓으면 별도의 에어컨이 없어도 엔진.실내의 열을 식힐 수 있다. 현재 이동통신업체에서 이 금속을 이용한 차량을 개발 중이다.

컴퓨터 등 열에 약한 각종 전자제품을 소형.슬림화 하는 데 이 신물질이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당초 이 기술은 러시아 군이 아프카니스탄 주둔 때 사막에 탱크를 배치하기 위해 썼던 것이다. 사막에서 낮에는 펄펄 끓고 밤에는 추운 탱크 안의 온도를 자유 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이 금속은 탱크전술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러시아 탱크는 소형이어서 에어컨을 달만한 공간이 없었다.

◇ 물방울 없애는 이온 주사 기술〓이온을 물질의 표면에 쏘아 물질의 표면 성질을 바꾸는 기술이다. 즉 백인의 얼굴을 살갗 색깔만 바꿔 영구적으로 흑인 얼굴로 만드는 식이다. 이 기술은 플라스틱이 전기를 통하도록 할 수도 있고, 안경 등에 김이 서리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석근 박사팀이 러시아가 위성 기술에 사용하던 것을 들여와 민수용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 이온 주사 기술은 우주공간에서 위성의 위치 제어용 에너지로 사용했다.

LG는 이 기술을 이용, 시간이 지나도 차갑게 하는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냉장고.에어컨 개발에 착수했다. 김이 서리지 않는 스키용 고글도 이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 고온에 견디는 소재〓진공상태에서 만든 단결정 신물질. 섭씨 약 3천도에서 견딜 수 있다.

제철소의 용광로의 온도가 약 섭씨 1천5백도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온에서 견디는 물질이다. 산업용 카스 터빈, 진공 용해로 등에 사용돼 이 분야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 물질을 사용하면 터빈 등의 수명을 10배 이상 늘릴 수 있다.

당초 이 기술은 러시아에서 위성 발사 때 꽁무니에서 불기둥이 쏟아져 나오는 부분에 썼다.

이외에 초음파 진단기.VCR의 다이아몬드 헤드 코팅 기술도 러시아 군수산업 기술을 응용, 개발한 것들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