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15년만에 장편 낸 김양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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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양호(47)씨의 일터는 남산 기슭에 있던 외교구락부를 강의실로 개조한 숭의여대 문예창작과다.

해방 이후 지난 80년대까지 정치 거물들이 들락거리며 정치판을 이끌어가던 밀담의 장소가 이제는 창작의 산실로 바뀌었다.

잔디와 정원수가 오밀조밀한 마당은 남산을 뒤로 하고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과작으로 유명하다. 1978년에 등단해 소설책을 두 권밖에 안 냈다. 나무 그늘에 자리잡자마자 과작인 이유를 물었다.

김씨는 "제가 게을러서…" 라며 말끝을 흐린다. 넓은 어깨와 살집이 넉넉해 보이는 인상에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 88년 문창과가 만들어질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쳐온 데다 지난해 학생처장까지 맡아 지나는 학생이며 교직원이 모두 인사를 한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장편을 써냈다. 〈사랑이여, 영원히〉다. 3.1운동을 전후한 일제식민 시절 한 독립운동가의 고난에 찬 삶과 사랑, 조국애가 주제다. "20년간 구상하고 써온 작품입니다.

우연히 어느 책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랑을 찾아 만주로 떠난 기생얘기를 읽고는 '소설로 만들어야지' 라고 작심했죠. 쓰기 시작한 것도 10년은 족히 된 것 같아요. "

소설은 작가의 나이를 한참 거슬러 올라간 시대상에 어울리는 고풍스런 문체로 당시 생활상을 소상히 그리고 있다.

김씨가 이처럼 시대를 건너 뛸 수 있었던 것은 국문학자로서 빙허 현진건과 단재 신채호를 좋아해 그들의 작품을 많이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빙허에게서 글쓰기를 배우고, 단재로부터 민족정신을 배운 셈이다.

"수난으로 얼룩졌지만 부끄럽지 않은 역사, 그 속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민족의 정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웅대한 기상을 그리려다 보니 만주를 배경으로 했고, 분단을 뛰어넘는 민족애를 말하려다보니 분단이전 시대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만들게 됐죠. "

〈일부 변경선〉이후 15년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작가는 오랜 퇴고 끝에 작품을 내놓고도 마음이 편치않다. 그가 고집스럽게 몰두하고 있는 묵직한 작품을 읽어줄 젊은 독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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