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락 리더십’ 태국 대홍수에 허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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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잉락 친나왓(사진) 태국 총리가 50년래 최악의 홍수 사태로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후광에 힘입어 지난 7월 총선에서 손쉽게 정권교체에 성공한 잉락 총리가 이 국가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잉락 총리가 민심이 크게 동요할 수 있는 최근의 대홍수와 같은 긴급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한 행정적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 큰 약점으로 꼽힌다.

 태국에서는 지난 4개월간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315명이 희생됐다. 이재민은 전체 인구 7000만 명 중 10%가 넘는 800여만 명에 달한다. 경제 손실액은 1567억 바트(약 5조7916억원)로 추산된다. 국내총생산(GDP)의 1%가 넘는 규모다. 로이터통신은 19일 “태국 정부는 GDP 성장률을 4%에서 0.3%포인트 낮춘 3.7%로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2% 선에 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제 기반시설 피해도 크다. 홍수로 20개 도시의 공장 1만4172곳이 물에 잠겼다. 중부지역에 생산공장이 있는 혼다·닛산·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은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노동부는 이번 홍수로 약 22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실직자 수는 70만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정작 잉락이 내세웠던 포퓰리즘성 ‘핵심 공약’은 홍수 사태에 밀려 엄두도 못 내게 됐다. 잉락은 7월 총선에서 ▶공무원 임금 두 배 인상 ▶신입 초등학생 전원에게 태블릿PC 지급 ▶최저임금 40% 인상 등을 내세워 승리했다. 야당인 민주당 당수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는 “잉락 총리가 국가 위기사태를 선포하고 핵심 공약을 미뤄야 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잉락 정부가 홍수 사태를 예상했으면서도 방치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싱가포르 동아시아연구소 파빈 차차발퐁푼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정부가 홍수 예방 조치를 거의 하지 않았다”며 “지금의 (홍수 사태) 상황은 리더십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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