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브랜드 가치를 정부가 통제 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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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박재항
이노션월드와이드 본부장

서울우유가 10월 24일부터 우유 가격을 약 9% 인상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보다 앞서 10월 12일자 중앙일보 경제면에는 서울우유가 가격을 올리려다 철회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배경에 농수산식품부의 압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업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협조를 요청했다’고 표현했지만, 기업에서야 충분히 압력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올해 물가가 정부가 애초 목표로 했던 4%를 넘기면서, 공정거래위원회를 필두로 모든 정부 부처들이 물가 잡기에 나서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우유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종 가격을 통제하는 식의 일차원적 대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때의 접근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투입, 소요된 비용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논란 끝에 결국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건축비, 토지 매입비 등의 투입비용과 마진을 밝히라는 아파트 원가 공개가 대표적 예다. 둘째는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지불하는 가격을 통제하는 방법이 있다. 위에 언급한 우유 가격 인상은 최종 가격 통제의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적정한지는 소비자가 제일 잘 안다. 올해 4월 농심에서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하며 신라면 블랙을 시장에 냈다. 700원 정도의 기존 신라면에서 두 배 이상 올린 1600원 정도에 시판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직접 나서 가격 논쟁을 일으켰다. 포장지에 쓰인 기존 신라면과 신라면 블랙의 성분을 비교하며, 광고에서 얘기하는 효능뿐만 아니라 두 배 이상이 나는 가격 차이가 적정한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또 지역별로, 유통점별로 최종 소비자 판매 가격도 비교했다.

 사실 제품 가격 책정은 기업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자 묘미다.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너무 높이면 소비자의 반발을 가져오고, 때로는 정부와 같은 제3자의 개입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가격에 별 변화를 주지 않으면 기존 제품과 별반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 인하를 할 때도 그렇다. 지나치게 가격을 내려버리면 품질 자체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기존에 바가지를 씌워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제품 가격에는 ‘브랜드’가 영향을 미친다. 브랜드는 제품이 표방하는 핵심 이미지일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감성적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전제품 브랜드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1990년대 중반에는 브랜드를 밝혔을 때 평가 가격이 브랜드를 가렸을 때보다 심하면 50% 가까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을 브랜드 가치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엔 한국 가전제품이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이는 바로 소비자다. 이런 브랜드 가치에 대해 정부나 기업이 불만이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소비자의 정서적인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효율성을 높이고, 정부는 공정한 경기가 되도록 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야 한다. 라면 사례에서 보듯이 소비자들은 성분 비교와 제품 평가 등을 직접 해가며 적극적으로 가격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다. 브랜드 가치를 포함해 궁극적으로 가격은 소비자들이 내리는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박재항 이노션월드와이드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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