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노희 미국 UCLA 치과대 학장 겸 치·의과대 석학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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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지구촌의 공공문제 연구, 새로운 지식의 창출, 그리고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지도자 육성.” 미래 대학이 나갈 방향과 역할에 대해 박노희(66)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주저없이 이 세 가지를 꼽았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대학들에겐 “재정 구축의 다각화를 통한 연구·장학 재원 마련, 운영의 투명성 확대, 학문적·정치적 자율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치과대 학장 겸 치·의과대 석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치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뛰어난 과학자 상(Distinguished Scientist Award)’을 수상했다. 주정부의 예산 감축 상황 속에서도 30년 묵은 고질병이었던 UCLA 치과대의 열악한 재무구조를 해결하고 교육과정도 개혁해 주목을 받았다. 현직 교수임에도 그의 이름을 딴 석좌교수직이 UCLA에 마련됐을 정도다.

 그가 18일 경희대를 찾아 특강을 한다. 주제는 ‘21세기 대학이 나갈 방향과 역할’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2일 국제전화로 미국 대학들의 변화 노력과 우리나라 대학들이 바꿔야 할 태도에 대해 물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정보의 파급·전달이 확대되고 빨라지고 있다. 국가와 사회의 혁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교육현장도 예외는 아닐 텐데.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지식의 확대, 정치적·사회적 보장, 교육복지 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정부든 기업이든 운영의 투명성·공익성을 요구 받고 있다. 미국주립대의 경우 성적 같은 학생의 개인정보를 빼곤 교수 월급부터 교육과정까지 모두 공개대상이다. 총장도 교내 위원회가 외부 후보자를 면접해 선출한다. 후보자들은 학생과 교직원 앞에서 발전공약을 제시하는 연설도 한다.”

-정보통신기술 덕에 지식의 취득과 전달도 쉽고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수사회와 교육기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불만도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빠른 속도로 생산·팽창하고 있다. 학문 간 융·복합도 일고 있다. 의학자들이 암을 연구하기 위해 컴퓨터·나노기술 분야 공학자들과 함께 연구한다. 시체를 해부하면서 CT, MRI 촬영도 같이 하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도 열 걸음 앞서 있는 학생들에게 옛 기초지식을 가르치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수들이 적지않다. 자기영역을 침범 받지 않으려는 행태도 여전하다. 학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200년 전 독일에서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선 여전하다.”

- 그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교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느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해야 한다. 창의적·비판적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조사·연구능력을 갖추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대학엔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수업까지 생기고 있다. 교수는 수업을 토론으로 바꿔야 한다. 도심 교통혼잡, 치주염 같은 과제를 주고 학생이 조사해오면 함께 의견을 나누며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다. 대학은 이런 식으로 연구를 중시하고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거액을 들여 세계적 석학을 데려오는 일도 주저해선 안 된다. 연구물에 대한 성과급제도 과감히 시행해야 한다.”

-인재 선발·양성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 학생 선발 때 성적순으로만 뽑아선 안 된다. 학생의 전체를 봐야 한다. 축구부 주장을 했다면 그가 익힌 리더십과 협동정신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빈곤지역과 편부모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이라면 그 자체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장학금도 성적순대로 줘선 안 된다. 사회봉사·연구활동·가정형편·진로계발 등을 모두 고려해 학생의 잠재력과 학업활동을 북돋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재원마련도 필요할 텐데.

“차세대 에너지 발굴, 기후변화 대응, 빈부격차 해소, 빈곤국가 공공보건 정책 등 지역사회와 지구촌의 현안을 연구해야 한다. 정부와 협력자가 돼 연구 예산을 지원받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학은 연구역량을 축적하고 지적재산권으로 만들어 활용하면 된다. 교수가 기업을 설립해 이윤을 내기도 한다. 실제 미국에선 한 교수가 개발한 의약품 판매이익의 일부가 해마다 대학의 수입으로 들어온다. 어떤 대학은 백화점을 세워 받은 임대비로 이를 충당하기도 한다. 한국 대학들도 이 같은 노력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 박노희 UCLA 교수 경희대 방문 특강

▶21세기 대학의 미래, 의과학 교육의 미래
10월 18일 오후 3시30분 경희대 청운관 B117
▶항바이러스 화학치료법
10월 19일 오전 9시 경희대 청운관 B117호
▶암과 텔로머라아제(Telomerase)
10월 20일 오전 10시30분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회의실
※경희대와 경희사이버대의 페이스북에서도 강연을 실시간으로 영상 중계합니다.

◆박노희 교수= 1998년 한국인 최초로 UCLA 치과대 학장에 취임했다. 이후 바이러스 질환 발생과정과 구강암 치료·연구의 업적을 인정 받아 2001년 ‘뛰어난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2009년엔 샤피로 자선재단이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UCLA에 그의 이름을 딴 석좌교수직이 신설됐다. UCLA 치대 교수 중 치의학 교육의 최고상인 기스상을 받은 건 그가 처음이다. 이민 1세인 그는 UCLA 치과대 운영과 기금조성에 능력을 발휘해 지난 30여년 동안 불안정했던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학장에 취임한 뒤 35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치과대 예산을 6500만 달러로 불렸다. 외부 지원금도 연간 3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로 늘렸다.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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