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경제의 위기, 위기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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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부소장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경제정책과 실물경제의 인과관계를 분석한 업적으로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심슨 프린스턴대 교수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상을 받은 당사자들이야 큰 영광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경제계와 일반시민들의 시선은 어째 심드렁하기만 하다. 물리학이나 화학, 의학상 수상자들은 무언가 인류의 복리 증진에 기여한 바가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고, 문학상과 평화상도, 보는 이에 따라 다소의 편차는 있겠지만, 그래도 웬만큼 객관적인 업적을 인정할 만하다. 그런데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이란 걸 보면 왠지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뚱딴지 같은 내용처럼 보인다. 이번에 수상한 두 사람의 업적은 ‘거시경제정책과 실물경제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계량적인 모델’을 개발해 경제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가 경제학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제의 발전에는 별로 기여한 것 같지는 않다. 세계경제는 이들이 ‘계량모델’을 개발한 이후에 더 잦은 위기와 더 심각한 경기침체에 시달려 왔다. 물론 이것이 이들의 연구 때문에 경제가 더 나빠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경제학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더구나 경제학자들은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도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에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학파마다 진단과 처방이 중구난방식으로 제각각이다 보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런 사정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전체 학계의 공인을 받은 경제학의 대가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 사이의 극단적인 입장 차이는 과연 이들이 같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 단적인 예가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경제학계의 논란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2008년 수상자 폴 크루그먼과 2001년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2010년 수상자 피터 다이아몬드 등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일단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게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1995년 수상자 로버트 루커스와 올해 수상자 사전트, 경제학 교과서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등은 통화 증발이나 재정확대로는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늘릴 뿐이라며 긴축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한다. 하버드대와 MIT를 중심으로 한 ‘짠물 학파’와 시카고대와 로체스터대를 중심으로 한 ‘민물 학파’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오스트리아학파까지 가세해 세계 경제학계는 가위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

 문제는 경제학자들 사이의 논란이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위기에 대처하는 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재정 위기가 각국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로 인해 해결이 늦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설사 리더십이 있다 해도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고명하신 경제 석학들조차 일치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판에 경제를 잘 모르는 정치인들이 무슨 확신을 가지고 정책을 세우겠는가. 사정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학문적 소신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편이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짠물학파는 대개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물학파는 공화당 쪽으로 기운다. 경제적 논의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진영 간의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진지한 학문적 성찰이나 공익적 관점보다는 정치적으로 어느 쪽 진영에 속하느냐에 따라 처음부터 결론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경제학 무용론(無用論)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노벨 경제학상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노벨상에 정치학상이 왜 없는지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이 그들만의 공허한 논란을 벌이는 사이 성난 시민들은 ‘월가를 점령하라’고 시위에 나섰다. 이 판에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 같은 이는 여기에 동조하거나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경제학자가 합리적인 논의를 제쳐놓고 이제는 목표도 해법도 없는 군중의 시위에 편승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학이 왜 위기인지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은 실용의 학문이다. 애초부터 현실과 떨어져서는 학문으로 존립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동안 경제학은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짜느라 현실로부터 너무 떨어졌다. 거꾸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지나치게 현실에 안주해 왔다.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적 구호를 외쳐온 게 아닌지 반성해볼 때다. 경제학은 이제 기로에 섰다. 과연 경제학이 과학적 엄밀성과 현실적 적합성을 갖춘 독자적인 학문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경제학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