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뚱뚱한 아이는 자라서 가난하게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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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미 캘리포니아대 폴 레이 교수는 정규직 노동자 6,312명을 대상으로 몸무게와 임금수준의 상관관계를 따졌다. 그 결과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비만환자의 수가 훨씬 많았다. 비만한 사람이 가난하다는, 혹은 가난한 사람이 더 비만해지기 쉽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우리나라 역시 저소득층이 밀집된 곳에 소아비만 어린이 숫자가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물론 나는 저소득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사회론적 비판의식에 동조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숙명론에만 기대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많은 아이들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또한 가지고 있다. 저소득이 비만을 부른다면, 비만 역시 저소득의 씨앗이기 때문에 이 불행한 연결고리는 반드시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비만과 지능, 학업능력의 관계에 대해 누누이 강조해왔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소아비만은 치료되어야 한다는 당부를 역설해왔다.

소아비만은 성장기 어린이의 건강한 뇌 발달을 막는 최악의 질병이다. 비만은 뇌 발달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비만한 몸을 유지하는데 다 써버리기 때문에 정상적인 뇌 영양 공급을 방해한다. 아이가 비만할수록 뇌 발달은 더 지체되고 저해될 수밖에 없다.

실제 비만한 사람의 뇌가 정상인의 뇌보다 작다는 보고가 있으며, 비만은 뇌의 정상적인 보상회로를 망가뜨려 음식충동이 강화되는 악순환을 만든다. 비만한 아이들은 대부분 학습이나 취미생활 등의 정상적인 성취와 보상에 대한 관심이나 동기보다는, 음식으로 욕구와 만족감을 해결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아 학습능력이나 일 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이는 임상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병원을 찾은 아이들의 심리와 학습능력을 반드시 점검하는데, 비만할수록 아이들의 집중력과 인지능력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을 예외 없이 목격한다. 심하게는 또래에 비해 50% 이상 인지능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비만은 지능이나 학습능력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사회생활과 미래의 삶도 어렵게 만든다. 비만한 아이들은 각종 정서장애나 성격문제를 동반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막는 커다란 저해요인이 된다. 특히 사회생활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반항장애를 겪는 비만어린이나 청소년이 매우 많다.

결론적으로 말해 비만은 아이의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생활이 남보다 뒤처지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하버드 건강연구소의 고트마커(Gortmaker) 교수의 광범위한 조사(10,039명)에 따르면 비만한 청소년은 고등학교 성적이 대부분 낮으며, 정상적인 아동에 비해 우수대학 합격률이 절반에 불과했고, 졸업 후 연봉도 정상아동들에 비해 평균 6710달러 적어 가난하게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마 이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확대될 것이다.

비만으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구진은 비만 치료에 드는 의료비 외에 비만환자를 직원으로 둔 회사에서 제공하는 직원 병가, 생산성 손실 그리고 비만 환자가 차량에 탑승할 경우 추가로 드는 휘발유 등의 경제적 비용을 합산한 결과, 비만 환자 1명에게 소요되는 연간 비용이 남성의 경우 2,646달러(약 310만 원), 여성의 경우 4,879달러(약 570만 원)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비만이 조기 사망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만으로 인한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남성의 경우 연간 최대 6,518달러(약 760만 원), 여성의 경우 연간 최대 8,365달러(약 97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피해 액수 역시 매년 급증할 것이다. 당연히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비용 저효율을 낳는 이런 비만환자의 고용을 꺼릴 것이고, 이는 비만은 직업선택이나 취업의 원천적인 핸디캡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일반적으로 비만한 인구가 겪게 될 경제적 차별이나 격차는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소아비만은 몸매나 외모, 건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소아비만은 장차 아이의 미래를 송두리째 짓밟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문제인 것이다. 비만한 어린이는 그 출발점부터 갖가지 난관을 안고 인생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출발점을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일, 부모세대에게 최소한도로 요구되는 의무일 것이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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